러일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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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1 = {{국기나라|러시아 제국}}<br />[[파일:Flag of Montenegro (1941-1944).svg|22px]] [[몬테네그로 공국]]
|교전국2 = {{국기나라|일본 제국}}
|지휘관1 =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니콜라이 2세]]<br />[[알렉세이 쿠로팟킨]]<br />[[스테판 마카로프]][[†]]<br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지휘관2 = [[메이지 천황]]<br />[[도고 헤이하치로]]<br />[[오야마 이와오]]<br />[[노기 마레스케]]
|병력1 = 50만 명 <br> 제1·제2 태평양함대
|병력2 = 30만 명 <br> 연합함대
|사상자1 = 2만 5331명 전사 <br> 6127명 부상사 <br> 1만 1170명 병사
|사상자1 =
|사상자2 = 4만 7152명 전사 <br> 1만 1424명 부상사 <br> 2만 1802명 병사
|사상자2 =
|작전 =
}}
 
'''러일 전쟁'''({{llang|ru|Рус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 {{llang|ja|日露戦争}})은 [[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가을까지 계속된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만주]]와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러일전쟁의 주요 무대는 만주 남부, 특히 요동반도와 한반도 근해이며,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의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적 욕망이 충돌하여 발생하였다. 러시아는 러시아 해군과 해상 무역을 위해 [[태평양]] 연안의 부동항을 얻으려 했다.

[[블라디보스톡]]은 사용 가능한 유일한 항구로, 여름에 주로 이용되었다. 여순(旅順; Arthur) 항은 연중 사용할 수 있었다. [[청일전쟁]] 이후인 [[1903년]] 8월부터 진행된 [[짜르]] 정부와 [[일본]]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일본은 [[조선]]에 대한 독점권을 얻기 위해 전쟁을 선택하였다.
 
이로부터 몇 차례의 전투 끝에 주변국들의 예상을 뒤엎고 [[일본]]이 승리하였고, 일본은 극적으로 동아시아의 판도를 뒤바꾸어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짜르 정부에 대한 불만이 거세지자 [[1905년]] [[피의 일요일 (1905년)|피의 일요일]]로 퍼지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