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조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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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6일 (화) 11:48 판
왕경(王經, ? ~ 260년)은 중국 삼국 시대 조위의 관료로, 자는 언위(彦偉)며[1] 기주 청하군 사람이다.[2]
행적
농민 출신으로[2], 같은 주 사람인 허윤(許允)과 함께 명사로 알려졌다.[2]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상한 일을 겪고 관로를 찾아가 점괘를 부탁하였으며, 관로에게 관직이 오를 징조라는 말을 들었으며, 얼마 못 되어 강하태수가 되었다.[3] 처음에 강하태수가 되었다가, 대장군 조상이 비단을 주고 오나라와 장사하도록 명령을 내리자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실상을 고했다.[1] 어머니는 왕경을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매 50대를 쳤고, 이를 들은 조상은 왕경에게 다시 죄를 주지 않았다.[1] 처음 왕경이 태수가 되자, 어머니는 “너는 농가의 아들로서 관위가 2천석(태수의 봉록으로, 태수를 일컫기도 했다)에 이르렀으나, 분수에 지나치면 상서롭지 못하니 이만하고 그치는 것이 좋겠다.”라고 했으나, 왕경은 이를 듣지 않았다.[2] 이후 두 주의 자사를 지냈고, 사례교위까지 되었다.[2]
정원 2년(255년) 8월 2일, 옹주자사로서 촉의 대장군 강유와 조서(洮西)에서 싸워 대패하고 적도성을 지켰다.[4] 당시 왕경은 정서장군 · 가절 · 도독옹양제군사 진태에게 강유와 하후패가 군사를 3분하여 진격하려 한다고 알렸으며, 진태는 강유 등이 군사를 3분할 수 없다고 보고 왕경을 적도에 주둔시키고 진태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적을 공격하려고 했다.[5] 그러나 왕경은 진태가 도착하기 전에 강유와 교전하여 대패하고 만여 명만 겨우 건져 적도성을 지켰고, 강유는 곧 적도성을 포위했다.[5] 진태와 협력하여 강유의 퇴로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 강유 등이 퇴각하여 겨우 구제되었다.[5] 그때 식량이 열흘분도 채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5]
감로 연간에는 상서가 되었다.[2] 감로 5년(260년) 5월, 황제 고귀향공은 시중 왕침, 산기상시 왕업과 함께 왕경을 불러들여 전횡을 부리던 사마소를 치고자 했다.[4][6][7] 왕경은 옛날 노 소공이 권신 계손의여를 치려다가 도리어 계손씨와 숙손씨의 반격을 받아 쫓겨난 일을 들어 황제에게 간했으나, 황제는 오히려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굳히며 왕경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6] 왕침과 왕업은 이를 사마소에게 전하려 했고, 왕경도 끌어들였으나, 왕경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8] 결국 왕침과 왕업은 둘이서만 사마소에게 가서 이를 전했고,[4][7][6][9] 이를 들은 사마소가 준비를 하고 반격하여 도리어 고귀향공이 시해당했다.[4][7][6] 왕경은 태후의 조서에 따라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정위에 넘겨졌고,[4] 반역죄로 처형당했다.[7]
사후
사례교위 시절 종사로 벽소한 상웅(向雄)은 왕경이 처형당한 동시에서 곡했다.[10] 또, 옹주자사 시절의 관리 황보안(皇甫晏)은 가재를 내어 장례를 치러줬다.[1] 태시 원년(265년), 서진 무제는 조서를 내려 왕경의 손자에게 낭중(郞中)을 주었다.[11]
주석
- ↑ 가 나 다 라 곽반, 《위진세어》 (진수, 《삼국지》 권9 제하후조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 ↑ 가 나 다 라 마 바 진수, 《삼국지》 권9 제하후조전
- ↑ 진수, 《삼국지》 방기전
- ↑ 가 나 다 라 마 진수, 《삼국지》 권4 삼소제기
- ↑ 가 나 다 라 진수, 《삼국지》 권22 환2진서위노전
- ↑ 가 나 다 라 습착치, 《한진춘추》 (진수, 《삼국지》 권4 삼소제기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 ↑ 가 나 다 라 방현령 등, 《진서》 권2 제기 제2
- ↑ 《진제공찬》 (진수, 《삼국지》 권4 삼소제기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 ↑ 곽반, 《위진세어》 (진수, 《삼국지》 권4 삼소제기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 ↑ 습착치, 《한진춘추》 (진수, 《삼국지》 권28 왕관구제갈등종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
- ↑ 습착치, 《한진춘추》 (진수, 《삼국지》 권9 제하후조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