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여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일본어위키번역 추가
5번째 줄:
 
해서여진(海西女直)은 16세기에서 17세기의 명말 청초 경에 [[개원]], [[길림]]에 거주하고 있던 여진의 집단이었다. 해서여진은 [[명나라]] 측에서 분류한 이름으로 후룬국 (忽剌國, 扈倫)으로 불리는 집단이었다. 후룬국은 우라(烏拉), 후이파(輝発), 하다(哈達), [[예허]](葉赫)의 4개 정치 체제로 구성되어있으며 만주사의 후룬 4부로 불렸다.
 
16세기 말에 누르하치가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우자, 해서여진의 후룬 4부는 [[1593년]] 이후 후금과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룬 4부는 상호 불화 때문에 협력하지 못하고, 건주여진을 통일 세력으로 정리한 누르하치 앞에서 각개 격파되어, [[1599년]]에 하다, [[1607년]]에 ‘후이파’, [[1613년]]에 ‘우라’가 차례로 멸망되어 후금에 흡수되었다.
 
홀로 남아 있던 ‘[[예허]]’는 후룬 4부의 가장 강력한 부족으로 누르하치와 격렬하게 싸웠다. 명나라의 후원을 업고 누르하치의 여진 통일 운동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지만,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명과 예허의 연합군이 누르하치에게 패배하여 저항하지 못하고, 멸망당했다.
 
후룬 4부는 후금에 병합이후 팔기에 편성되어 청나라의 지배 민족인 만주인의 일부가 되어갔다.
 
== 해서여진의 4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