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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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과 곽사는 관군을 공격하였고, 동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장제도 이에 따랐다.
 
홍농(弘濃)에서 관군을 괴멸 상태에까지 이르게 하나, 원래 부하였던 양봉과 화해하여 추격을 그만두었다. 이로 인하여 헌제는 [[황하]](黃河)를 건너 낙양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결국 헌제와 함께 구심력을 잃은 이각의 군세는 점차 쇠퇴하였고, [[198년]] 4월 조조의 부하 [[단외]](段煨)와 [[배무]](裴茂)에게 토벌당하여 자신과 삼족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이각은 곽사와 함께 헌제를 추격했으나 헌제는 조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조조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이각과 [[곽사]]를 [[낙양 전투]]에서 완전히 괴멸시켜 버렸다. 결국 헌제와 함께 구심력을 잃은 이각의 군세는 점차 쇠퇴하였고, [[198년]] 4월 조조의 부하 [[단외]](段煨)와 [[배무]](裴茂)에게 토벌당하여 자신과 삼족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