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악 (중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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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안군 번진의 점거 ===
[[886년]] [[음력 7월|7월]], 주악은 본거지인 형주에서 군대를 발동하여 당시 흠화군(欽化軍) 번진의 본거지였던 담주를 공격해 왔다. 이에 흠화군 절도사 [[민욱 (당나라)|민욱]]은 회서(淮西)의 장수 황호(黃皓)를 담주성으로 초청하여 자신을 도와 함께 그곳을 지키게 했다. 황호는, [[허난 성|하남]] 일대의 유력 군벌로 당시 채주(蔡州. 현 [[허난 성]] [[주마뎬 시]])에서 [[황제]]를 자칭했던 봉국군 절도사(奉國軍節度使. 본거지는 현 [[허난 성]] [[주마뎬 시]]) [[진종권]](秦宗權)의 휘하 장수였다. 그런데, 그 황호가 민욱을 죽이고 담주를 점거해 버렸다. 그 후, 주악은 그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와서 담주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황호를 격파하여 그를 잡아 죽이고 담주를 점거하였다. 희종은 흠화군을 무안군으로 개칭하였고, 주악을 절도사로 임명하였다.<ref name=ZZTJ256>《[[자치통감]]》, [[:zh:s:資治通鑑/卷256|권 256]]</ref>
 
그 후, 주악은 재임 6년째인 [[891년]]에 희종의 동생으로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해 있었던 [[당 소종]]에 의해 영남서도 절도사(嶺南西道節度使. 본거지는 현 [[광시 성]] [[난닝 시]])로 임명되었다. (이 임명이 주악에게 인근 번진을 추가로 줄 의도였는지, 아니면 그를 영남서도로 전출시킬 의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여간, 주악은 실제로는 아예 영남서도로 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f name=ZZTJ258>《[[자치통감]]》, [[:zh:s:資治通鑑/卷258|권 258]]</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