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굉 (장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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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부터 담대하였으며, 자잘한 형식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홍농태수(弘農太守)가 되었고, 이후 기주자사(冀州刺史)로 전임하였다. 왕굉은 성품이 각박하여 호족들과사적인 교류하려편지는 하지쓰지 않았는데않았고, 호족들을 멀리하였다. 때문에 빈객들은 '''"왕(王 ; 왕굉)은 혼자 앉는다"'''라고 말하였다.
 
훗날 동생 왕윤이 사도가 되었고, 왕윤은 왕굉을 우부풍태수(右扶風太守)로 전임시켰다. 이때 같은 군 사람 송익(宋翼)이 좌풍익태수(左馮翊太守)가 되었는데, 훗날 [[이각 (후한)|이각]](李傕) 등이 [[장안]](長安)에 입성하였을 때 왕윤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 두 군을 두려워하여 손을 쓰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