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민주국: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EmausBot (토론 | 기여)
잔글 r2.6.4) (로봇이 바꿈: ru:Республика Тайвань (1895)
Sienic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타이완의 역사}}
'''대만민주국'''(臺灣民主國) 또는 '''타이완 민주국'''({{llang|zh|臺灣民主國/台湾民主国}}, {{llang|en|Republic of Taiwan}})은 [[1895년]] [[5월 25일]], [[타이완]]의 친[[청나라]] 인사들이 [[일본]]에 대항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정부체이다. [[1895년]] [[10월 23일]] 일본에 의해 해산당했다.
 
==역사==
[[대만]]은 [[청나라]]에게 병합된 다음 [[복건 성]] 순무의 관할하에 있었다. [[1884년]]에 [[청불전쟁]]이 일어나면서 프랑스군은 대만 북부의 석탄 광산에 주목하고 대만을 근거로 중국의 화남지방을 통제하려 하였다. 청조는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순무급의 [[유명전]]을 파견하였다.
 
[[1885년]]에 성(省)을 설치하였으며 유명전을 순무로 임명하여 행정구역을 조정하고 대륙의 [[양무운동]]과 같이 [[대만]]의 근대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던 중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나라가 패전하고 [[대만]]을 일본에 할양하게 된다. [[1895년]] [[5월 8일]] [[이토 히로부미]]와 [[오정방]]이 연대(煙臺)에서 비준서를 교환하게 되어 [[대만]]을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소식이 [[대만]]에 전해지자 대만인들은 '청조의 매국행위'에 항의하고, 일본과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여 [[대만]]이 일본에게 넘어가는 것에 패하여 항거하였다. 그러나 청조는 기한 안에 [[대만]]을 일본에 넘겨주기 위하여 대만순무 [[당경숭]]에게 대만을 철수해 내륙으로 건너오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신사인 [[구봉갑]](丘逢甲)이 천여 명을 이끌고 순무 청사에 가 [[당경숭]]에게 항일을 지휘해주도록 요청하였다. 당경숭도 이에 응하기로 하여 [[구봉갑]] 등은 [[1895년]] [[5월 25일]]에 '대만민주국'을 선포하고 [[당경숙]]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대만민주국이 성립된 이후 당경숭은 각부와 지방의 관리를 대부분 전직 관리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군사도 대만에 주둔하였던 청군의 잔여 병사들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유영복]]을 민주대장군, [[구봉갑]]을 의용군통령으로 임명하였으며 각 지방에도 방어 태세를 갖추어 일본군의 상륙에 대비하였다.
 
한편, 일본은 비준서 교환 후 무력으로 대만을 접수하기 위하여 [[5월 10일]]에 육군대장 [[가바야마 스게노리]]를 대만 초대총독 겸 대만 접수 전권대표로 임명하여 대만을 접수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 동안 대만 각지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결국, 대만은 일본에 의하여 무력으로 진압되어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할때까지 식민통치를 받았다.
 
== 대만민주국의 대통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