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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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귀족작위 거부자는 단 8명뿐이며, 이상재 선생과는 관련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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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의 지도자이며 기독교, 개화파와 친분을 쌓았던 이상재는 바다 건너 해양 문명국이 [[대한제국]]의 자유와 해방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제자인 [[이승만]], 친구 [[윤치호]] 등으로부터 [[가쓰라-태프트 밀약]] 소식을 듣자 이상재는 [[미국]]에 대해 엄청난 실망감을 품게 된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된 뒤 고종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관직에 미련이 없었음을 밝혔으나 도와달라는 [[대한제국 고종|고종]]의 애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의정부]]참찬에 머물렀고, 1907년 법부대신의 교섭을 받았으나 사양하였으며, 군대해산 이후 관직을 사퇴했다.
 
[[파일:Yunchiho1945.jpg|thumb|right|180px|[[윤치호]]<br>(그와 함께 YMCA를 지도하였다.)]]
 
석방된 뒤 함께 감옥에 있었던 [[김정식]], [[유성준]], [[이승만]] 등과 그밖에 [[윤치호]] 등과 함께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 가입, YMCA 초대 교육부장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