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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anjian poster in Nanking.jpg|섬네일|250px|오른쪽|[[중일전쟁]] 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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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남송]]의 재상 [[진회]], [[명나라]]말 때 [[오삼계]]가 있으며, [[중일 전쟁]]때 [[일본제국]]에 크게 협력한 [[왕징웨이]]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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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국에서는 한간의 의미가 다소 바뀌어 중국인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민족의 배반자, [[매국노]]를 가리킬때 쓰이는 표현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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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때 지배 민족이던 [[만주족]]과 내통한 한인(漢人)을 가리켰던 데에서 유래하는데, 한족 내의 존재로 인식되었지만, 19세기 무렵 제국주의 열강의 영향이 늘어난 때, 열강 세력에 달라붙어 협력하는 자들이 많아지자, '매국노', '앞잡이'에 대한 대상이 한족에서 만주족도 포함되어 확대되었다.
특히, [[1840년]] [[제1차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의 주권이 상실된 지역인 조계가 생겨나면서 개항지에서의 기독교 포교와 교회 설립이 확대되면서 기독교를 통해 제국주의 열강세력들 편으로 가서 부역행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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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한간들은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 양측으로부터 재판을 받아 대규모로 처벌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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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당의
[[1945년]]부터 [[1947년]] 10월까지 중국 국민당 정부는
=== 공산당의
그러나, [[제2차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의 본토 패망으로 장개석 정부는
[[중국공산당]] 정부는
== 대표적인
* [[진회]](秦檜) - [[남송]]의 재상으로 [[금나라]]와 화평을 제의하면서 [[악비]]를 옥사시킴.
* [[오삼계]](吳三桂) -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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