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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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공 사상에서는, "공(空)"을 관조하는 것이 곧 [[연기 (불교)|연기]](緣起)의 법칙을 보는 것이며 또한 진실한 세계인 [[중도 (불교)|중도]](中道)의 진리에 눈을 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또한 [[대승불교]] 실천의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히 [[대승경전]] 중 《[[반야경]](般若經)》과 이에 입각하여 [[용수]](龍樹)가 저술한 논서인 《[[중론]](中論)》에서 명백하게 밝혀 두고 있다. 《[[중론]]》 제24장 〈관사제품(觀四諦品)〉에는 아래와 같은 유명한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법{{.cw}}존재 또는 현상은 인과 연에 의해 생겨난다)"의 게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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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치로서의 이공 ===
 
''';아공'''(我空): '''인공'''(人空)이라고도 하는데,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ref name="성유식론-이공"/>,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ref name="성유식론-이공"/>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제1권-조론의이유"/><ref name="운허-煩惱障(번뇌장)">{{서적 인용|저자=운허|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2%88%EB%87%8C%EC%9E%A5&rowno=1 |장=煩惱障(번뇌장)|제목=앞의 책|확인일자=2011년 4월 3일}}</ref>
 
''';법공'''(法空)은,: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ref name="성유식론-이공"/>,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ref name="성유식론-이공"/>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제1권-조론의이유"/><ref name="운허-所池障(소지장)">{{서적 인용|저자=운허|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6%8C%EC%A7%80%EC%9E%A5&rowno=1 장=所池障(소지장) |제목=앞의 책|확인일자=2011년 4월 3일}}</ref>
 
아공(我空)을 '''인무아'''(人無我)라고도 하며 법공(法空)을 '''법무아'''(法無我)라고도 한다.<ref name="성유식론-이공"/> 그리고 이 둘을 통칭하여 '''이무아'''(二無我)라고 하는데, 이무아(二無我)는 이공(二空)과 같은 뜻이다.<ref name="운허-二無我(이무아)">{{서적 인용|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D%B4%EB%AC%B4%EC%95%84&rowno=1 |장=二無我(이무아)|제목=같은 책 |확인일자=2011년 4월 3일}}</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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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식론]]》에서는 이와 관련된 수행 단계를 더 자세히 설명하는데, 크게 [[자량위]](資糧位){{.cw}}[[가행위]](加行位){{.cw}}[[통달위]](通達位){{.cw}}[[수습위]](修習位){{.cw}}[[구경위]](究竟位)의 다섯 단계("[[오위]]{{.cw}}五位")로 나누고 있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오위(五位)">{{서적 인용|저자=호법(護法) 등|장고리=http://www.cbeta.org/result/normal/T31/1585_009.htm |장=성유식론(成唯識論) |기타=제9권 |제목=대정신수대장경 |꺾쇠표=예 |id=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48b11(07) - T31n1585_p0048b15(06) |확인일자=2011년 4월 3일|인용문=
何謂悟入唯識五位。一資糧位。謂修大乘順解脫分。二加行位。謂修大乘順決擇分。三通達位。謂諸菩薩所住見道。四修習位。謂諸菩薩所住修道。五究竟位。謂住無上正等菩提。}}</ref> 이 중에서 네 번째인 [[수습위]]는 다시 [[십지]](十地)의 열 단계로 나뉘는데, [[십지]]는 극희지(極喜地){{.cw}}이구지(離垢地){{.cw}}발광지(發光地){{.cw}}염혜지(焰慧地){{.cw}}극난승지(極難勝地){{.cw}}현전지(現前地){{.cw}}'''원행지'''(遠行地: 제7지){{.cw}}부동지(不動地){{.cw}}선혜지(善慧地){{.cw}}'''법운지'''(法雲地: 제10지)이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십지(十地)">{{서적 인용|장고리=http://www.cbeta.org/result/normal/T31/1585_009.htm|장=성유식론(成唯識論)|제목=같은 책|id=T31, No. 1585, CBETA, T31n1585_p0050c17(00) - T31n1585_p0051b07(01)|확인일자=2011년 4월 3일|인용문=<poem>
:次修習位其相云何。頌曰。
: 29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 捨二麤重故  便證得轉依
:論曰。菩薩從前見道起已。為斷餘障證得轉依。復數修習無分別智。此智遠離所取能取。故說無得及不思議。或離戲論說為無得。妙用難測名不思議。是出世間無分別智。斷世間故名出世間。二取隨眠是世間本。唯此能斷獨得出名。或出世名依二義立。謂體無漏及證真如。此智具斯二種義故獨名出世。餘智不然。即十地中無分別智。數修此故捨二麤重。二障種子立麤重名。性無堪任違細輕故令彼永滅故說為捨。此能捨彼二麤重故便能證得廣大轉依。依謂所依即依他起與染淨法為所依故。染謂虛妄遍計所執。淨謂真實圓成實性。轉謂二分轉捨轉得。由數修習無分別智斷本識中二障麤重故能轉捨依他起上遍計所執及能轉得依他起中圓成實性。由轉煩惱得大涅槃。轉所知障證無上覺。成立唯識意為有情證得如斯二轉依果。或依即是唯識真如。生死涅槃之所依故。愚夫顛倒迷此真如。故無始來受生死苦。聖者離倒悟此真如。便得涅槃畢究安樂。由數修習無分別智斷本識中二障麤重故能轉滅依如生死及能轉證依如涅槃。此即真如離雜染性。如雖性淨而相雜染。故離染時假說新淨。即此新淨說為轉依。修習位中斷障證得。雖於此位亦得菩提而非此中頌意所顯。頌意但顯轉唯識性。二乘滿位名解脫身。在大牟尼名法身故。
 
:
:云何證得二種轉依。謂十地中修十勝行斷十重障證十真如二種轉依由斯證得。言十地者。一極喜地。初獲聖性具證二空能益自他生大喜故。二離垢地。具淨尸羅遠離能起微細毀犯煩惱垢故。三發光地。成就勝定大法總持能發無邊妙慧光故。四焰慧地。安住最勝菩提分法燒煩惱薪慧焰增故。五極難勝地。真俗兩智行相互違合令相應極難勝故。六現前地。住緣起智引無分別最勝般若令現前故。七遠行地。至無相住功用後邊出過世間二乘道故。八不動地。無分別智任運相續相用煩惱不能動故。九善慧地。成就微妙四無閡解能遍十方善說法故。十法雲地。大法智雲含眾德水蔽一切如空麤重充滿法身故。如是十地總攝有為無為功德以為自性。與所修行為勝依持令得生長故名為地。</poem>}}</ref> 《[[성유식론]]》에 따르면 [[아집]]인 [[번뇌장]]은 [[수습위]]의 [[십지]] 중 제7지인 [[원행지]](遠行地)에서 '''완전히 제거'''되어 제8지부터는 [[아공]]의 경지에 있게 된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십지(十地)"/> 그리고 [[법집]]인 [[소지장]]은 [[수습위]]의 [[십지]] 중 제10지인 [[법운지]](法雲地)에서 완전히 제거 될 수 있는데, '''완전히 제거'''되면 다섯 단계("[[오위]]{{.cw}}五位")의 마지막인 [[구경위]](究竟位)에 이르게 되고 해당 [[보살]], 즉 [[대승불교]]의 수행자는 비로소 [[부처]]가 된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십지(十地)"/>
 
[[유가유식파]]는 [[열반]]과 [[해탈]]은 동의어로 사용하는 반면, [[열반]]과 [[보리]]는 용어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유가유식파]]의 문맥에서 [[열반]](또는 해탈)은 [[아집]]인 [[번뇌장]]이 완전히 제거된 [[아공]]의 상태를 의미한다.<ref name="성유식론-이장-김묘주주석"/> 그리고 [[보리]]는 [[법집]]인 [[소지장]]이 완전히 제거된 [[법공]]의 상태를 의미한다.<ref name="성유식론-이장-김묘주주석"/> 《[[성유식론]]》에서는 [[열반]]을 진해탈(眞解脫: 참다운 해탈)이라고도 표현하며 [[보리]]를 대보리(大菩提: 큰 깨달음{{.cw}}완전한 깨달음)라고도 표현하고 있다.<ref name="성유식론(成唯識論)-제1권-조론의이유"/><ref name="성유식론-이장-김묘주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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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三空)은 아공(我空){{.cw}}법공(法空){{.cw}}구공(俱空)을 통칭하는 불교 용어이다. 삼공의 각각은 증득한 경지를 뜻하기도 하고 또는 경지를 증득하기 위한 수단을 뜻하기도 한다.<ref name="운허-삼공">{{서적 인용|저자=운허|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82%BC%EA%B3%B5&rowno=1 |장=三空(삼공)|제목=앞의 책}}</ref>
 
''';아공'''(我空{{.cw}}ātma-śūnyatā): 실아(實我)가 없다는 것으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색{{.cw}}수{{.cw}}상{{.cw}}행{{.cw}}식의 [[5온]](五蘊)이 화합하여 이루어진 존재로, 진실로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다"(공무{{.cw}}空無)는 것을 뜻한다.<ref name="운허-아공">{{서적 인용|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C%95%84%EA%B3%B5&rowno=1 |장=我空(아공)|제목=같은 책}}</ref> 또한, 수행에 의해 나라는 관념과 나의 소유물이라는 주관적 미집(迷執)인 [[아집]](我執)을 벗어난 경지를 뜻한다.<ref name="운허-구공">{{서적 인용|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A%B5%AC%EA%B3%B5&rowno=3 |장=俱空(구공)|제목=같은 책}}</ref>
 
''';법공'''(法空): 제법(諸法) 또는 만유(萬有), 즉 물질(색{{.c}}色)과 마음(심{{.c}}心)의 [[법 (불교)|모든 존재]]는 모두 [[원인과 결과]], 즉 [[인연법]]에 의해 생긴 임시적인 가짜 존재로서 거기에는 고정된 [[실체]]로서 집착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러한 의미에서 만유(萬有)의 체(體)가 "없다"(공무{{.cw}}空無)는 것 뜻한다.<ref name="운허-법공">{{서적 인용|장고리=http://buddha.dongguk.edu/bs_detail.aspx?type=detail&from=&to=&srch=%EB%B2%95%EA%B3%B5&rowno=3 |장=法空(법공)|제목=같은 책}}</ref> 또한, 수행에 의해 물질과 마음의 여러 가지에 대한 객관적 미집(迷執)인 [[법집]](法執)을 벗어난 경지를 뜻한다.<ref name="운허-구공"/>
 
''';구공'''(俱空):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ref name="운허-구공"/>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신라]]의 승려인 [[원효]]는 자신의 저서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대의를 기술하는 문단에서, [[본성]], 즉 마음의 근원은 있음(有)과 없음(無)을 떠나 있어 홀로 청정(淨)하며 그러면서도 마음의 근원의 참된 이치 또는 성품에 해당하는 아공(我空){{.cw}}법공(法空){{.cw}}구공(俱空)의 3공(三空)의 바다는 그냥 비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제]](眞諦)와 [[속제]](俗諦)를 원융하고 있어 담연하다(湛然: 깊다, 충만하다)고 하였다.<ref name="금강삼매경론-대의"/> 또한 원효는 마음의 근원은 깨뜨림이 없으면서도 깨뜨리지 않음이 없고 세움이 없으면서도 세우지 않음이 없으므로 무리(無理: 이치가 끊어진 자리)의 지리(至理: 모든 것을 세우는 지극한 이치)이자 불연(不然: 그러한 것이 끊어진 자리)의 대연(大然: 크게 그러한 것, 즉 만법을 세우는 큰 것)이라고 하였다.<ref name="금강삼매경론-대의">{{서적 인용|저자=원효|장고리=http://www.cbeta.org/result/normal/T34/1730_001.htm |장=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기타=제1권 |제목=대정신수대장경 |꺾쇠표=예 |id=CBETA. T34n1730_p0961a07(01) - T34n1730_p0961a21(00) |확인일자=2011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