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온 (동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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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온'''(張溫, [[193년]] ~ [[230년]])은 [[중국]]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오 (삼국)|오]](吳)의 정치가로, 자는 '''혜서'''(惠恕)이며 양주(揚州) 오군(吳郡) 오현(吳縣) 사람이다.<ref name="sam57"> [[진수 (역사가서진)|진수]] : 《[[삼국지]]》 권57 오서 제12권 우육장낙육오주전</ref>
 
==행적==
어려서부터 절조가 있었고, 용모가 매우 탁월했다.<ref name="sam57"/> [[손권]](孫權)이 공경들에게 물었다.
 
'''"장온은 현재 누구와 견줄 만한가?"'''
 
대사농 [[유기 (경여)|유기]](劉基)는 [[전종]](全琮)의 무리에 견주었지만, 태상 [[고옹]](顧雍)은 유기가 장온을 잘 모르는 것이며 장온에게는 아무도 견줄 수 없다고 말했다. 손권은 장온을 불렀고, 장온의 문사와 점대는 보는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손권도 태도를 고쳐 예를 더했으며, [[장소 (동오)|장소]](張昭)는 특히 장온에게 기대하였다. 의랑, 선조상서가 되었고, 태자태부로 승진했다. 손권에게 태자중서자로 덕행이 출중한 사람을 쓰도록 권하여, [[진표 (동오)|진표]](陳表) 등이 기용되었다.<ref name="sam57"/><Ref name="sam59">진수: 《삼국지》 권59 오서 제14권 오주오자전</ref>
 
32세에 보의중랑장(輔義中郞將)이 되어, 사자로서 촉에 파견되었다. 떠날 때 [[진복]](秦宓)과 문답을 하여 그를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ref name="sam38">진수: 《삼국지》 권38 촉서 제8권 허미손간이진전</ref> 돌아온 후 예장(豫章)으로 가 출병하였으나, 그 사업은 완성되지 않았다.<ref name="sam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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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평==
*《회계전록》에 따르면, 여요 사람 우준(虞俊)은 장온이 재능은 풍부하지만 지혜는 없고, 화려하지만 실질이 없으며, 결국 사람들의 원망을 한몸에 받아 실각할 것을 예견하고 탄식했다. [[제갈량]](諸葛亮)은 우준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는데, 나중에 실로 그렇게 되자 우준에게 찬탄했으며, 한동안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하다가 말했다. “알았다. 그 사람은 청탁과 선악의 구분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이다.”<ref name="k">우예: 《회계전록》(《삼국지》 권57에 배송지가 인용한 부분)</ref>
*진수는 《삼국지》에서 장온은 재능은 탁월했지만, 자신을 지키는 지혜가 부족하여 화를 입었다고 평했다.<ref name="sam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