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크주 (미크로네시아 연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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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lag of Chuuk.svg|thumb|250px|추크의 기.]]
[[파일:Map Chuuk Islands1.png|thumb|250px|추크 제도의 지도.]]
'''추크 제도'''(Chuuk Islands)는 태평양 남서쪽에 있는 군도로., [[야프 제도]], [[코스라이에 섬]], [[폰페이 섬]]과 함께 [[미크로네시아 연방]]을 이룬다. 추크 제도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섬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이전에는 '''트루크 제도'''(Truk Islands)로 알려지기도 했다.
 
== 역사 ==
추크 제도에 인류가 최초로 정착하게 된 것이 언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로 보어 적어도 2000년 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추크 제도는 [[캐롤라인 제도]]의 일부로서 [[대항해 시대]] 이후에는 [[스페인 제국|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19세기]] 말 들어 [[독일 제국|독일]]의 통치하에 들면서 트루크 제도로 불리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일본 제국]]의 통치하(委任統治領)에 들어 각 섬에 사계 제도(四季諸島(; [[웨노 섬|春島]], [[토노아스 섬|夏島]], 秋島, [[우만 섬|冬島]]: 오늘날의 [[나모네아스 제도]]), 칠요 제도(七曜諸島(; 日曜島, 月曜島, 火曜島, [[토루 섬|水曜島]], 木曜島, 金曜島, 土曜島: 오늘날의 [[파이추크 제도]]) 등의 이름을 붙이고, 둘레의 산호초의 섬에도 子島, 丑島, 寅島… 같이 12간지를 따서 섬 이름을 붙였다.
추크 제도는 [[캐롤라인 제도]]의 일부로서 [[대항해 시대]] 이후에는 [[스페인 제국|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추크 제도는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기지였다. 1944년 [[헤일스톤 작전]]에 의해 추크 섬에서 미국과 일본 해군 사이의 큰 해전이 벌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1979년 [[미크로네시아 연방]]이 독립할 때까지 추크 제도는 [[미국령 태평양제도]]의 일부였다.
[[19세기]] 말 들어 [[독일 제국|독일]]의 통치하에 들면서 트루크 제도로 불리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일본 제국]]의 통치하(委任統治領)에 들어 각 섬에 四季諸島([[웨노 섬|春島]], [[토노아스 섬|夏島]], 秋島, [[우만 섬|冬島]]: 오늘날의 [[나모네아스 제도]])니 七曜諸島(日曜島, 月曜島, 火曜島, [[토루 섬|水曜島]], 木曜島, 金曜島, 土曜島: 오늘날의 [[파이추크 제도]]) 등의 이름을 붙이고, 둘레의 산호초의 섬에도 子島, 丑島, 寅島… 같이 12간지를 따서 섬 이름을 붙였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추크 제도는 일본 제국 해군의 주요 기지였다. 1944년 [[헤일스톤 작전]]에 의해 추크 섬에서 미국과 일본 해군 사이의 큰 해전이 벌어졌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부터 1979년 [[미크로네시아 연방]]이 독립할 때까지 추크 제도는 [[미국령 태평양제도]]의 일부였다.
 
2002년 7월 2일 열대폭풍 차탄에 의한 폭우가 30여 곳에서 산사태를 일으켜 47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