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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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과 황권의 동요==
===나가야 왕의 변과 고묘시 황후 추대===
나라 시대 초기에는 [[나카토미노 가마타리]](中臣鎌足)의 아들 [[후지와라 후히토]]가 정권을 쥐고 율령제도의 확립에 진력하는 동시에 황실과 인척관계를 맺으며 [[후지와라 씨]]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 후히토 사후에는 [[다케치 황자]](高市皇子)의 아들로 [[덴무 천황]]의 손자인 [[나가야 왕]](長屋王)이 [[우다이진]]이 되어 정권을 담당하였다. 전대부터 누적되어 온 과중한 부담을 견디지 못한 농민들의 유랑과 도망이 급격히 늘어나 사회 불안이 표면화되었기 때문에, 정부는 재원확보를 위해 [[723년]]([[요로 (연호)|요로(養老)]] 7년)에는 [[삼세일신법]](三世一身法)을 시행하여 개간을 장려하였다. [[몬무 천황]]과 후지와라 후히토의 딸인 [[후지와라 미야코]](藤原宮子) 사이에서 태어난 [[쇼무 천황]]이 즉위한 [[724년]]([[진키]] 원년) 즈음부터 후히토의 네 아들 [[후지와라 무치마로|무치마로]](武智麻呂), [[후지와라 후사사키|후사사키]](房前), [[후지와라 우마카이|우마카이]](宇合), [[후지와라 마로|마로]](麻呂)가 정계에 진출하였다. [[729년]](진키 6년), 나가야 왕이 사실상 정계 최고직에 해당하는 [[사다이진]]에 취임하자, 이에 위기감을 느낀 후지와라 4형제는 ‘좌도(左道)에 빠져 국정을 기울게 한다’고 참소하여 나가야 왕을 자결로 몰아넣고([[나가야 왕의 정변]]), 정권을 장악했다. 정변 직후, 후지와라 씨는 후히토의 딸인 고묘시(光明子, [[고묘 황후]](光明皇后))를 [[쇼무 천황]]의 황후로 추대하는 데 성공하여, 고묘시는 신하로서는 최초의 황후가 되었다.
 
===다치바나 모로에 정권과 쇼무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