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무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9번째 줄:
덴표쇼호 원년 7월 2일([[749년]] [[8월 19일]]), 딸이자 황태자였던 아베(阿倍) 내친왕(훗날의 [[고켄 천황]])에게 양위한다(일설에는 스스로 '[[삼보]]의 종'이라 칭한 천황이 독단으로 출가해버리는 바람에 조정에서는 몹시 당황한 와중에 퇴위 수속을 밟았다고도 한다). 남자로서 태상천황이 된 것은 이것이 최초였다. 덴표쇼호 4년 4월 9일([[752년]] [[5월 30일]]), 도다이사 대불의 개안법요(開眼法要)를 실시했다.(16미터 높이의 대불 축조 때문에 일본 내 청동과 금은의 재고가 바닥났다고 한다.) 덴표쇼호 6년([[754년]])에는 당의 승려 칸진(鑑眞)이 일본을 방문해 태상천황이 황태후나 천황을 대동하여 함께 만나기도 했는데, 이 무렵 오랫동안 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 미야코와는 사별했다. 덴표쇼호 8년([[756년]])에 덴무 천황의 손자인 후나도왕(道祖王)을 황태자로 삼으라는 유조를 남기고 붕어한다. 계명은 승만(勝満)이었다.
 
[[파일:Burialmound_EmperorShomu_Nara.jpg|thumb|쇼무 천황의 무덤]]
사후에는 고묘 황태후의 의사도 반영되어 태상천황이 생전에 아끼던 유품들이 도다이사에 봉납되었는데, 그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도다이사의 쇼소인(正倉院)에 전해지고 있다. 덧붙여 [[1907년]]에서 [[1908년]]에 있었던 도다이사의 대불전 개수공사 때에 불상의 연화좌 옆에서 두 자루의 칼이 발견되었는데, 2010년 X선 조사를 통해, 이 칼들이 쇼무 태상천황의 유품들을 도다이사에 봉납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759년]] 12월)에서 다시 쇼소인에서 반출되어 국가진보장(國家珍寶帳, 쇼소인의 소장품 목록)에 '제물(除物, 제외된 물건)'로 기재된 '요노보켄(陽寶劒, 양의 보검)'과 '인노보켄(陰寶劒, 음의 보검)'임이 판명되었다. 이 한 쌍의 칼은 모두 쇼무 태상천황이 생전에 아끼던 것으로 쇼소인에 한 번 봉납되었다가 다시 고묘 황후에게 반환된 것으로 여겨진다.
 
천황의 무덤은 지금의 일본 [[나라 시]] 호렌쵸(法蓮町)에 있으며 사호야마노미나미노미사사기(佐保山南陵)라 불린다. 이 무덤 동쪽에 고묘 황후의 무덤도 함께 모셔져 있다.
== 재위 중 주요 사건 ==
[[파일:Burialmound_EmperorShomu_Nara.jpg|thumb|쇼무 천황의 무덤]]
{{역대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