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북학의'''》(北學議)는 [[조선 정조]] 때 [[북학파]]인 [[박제가]]가 쓴 책이다. 정조 2년([[1778년]]) 이덕무 등과 함께 사은사 [[채제공]]을 따라 청의 수도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온 저자는 청에서의 사행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조선 사회의 문제점과 대책을 정리해 이 책을 저술하였다. 2권 1책. 필사본.
 
== 개설 ==
7번째 줄:
== 내용 ==
 
내편은 차선(車)·선(船)ㆍ성벽·성(城)·벽(○)·와(瓦)·옹(甕)·단(簞)·궁실(宮室)·창호(窓戶)·계체(階○)·도로(道 路)·교량ㆍ목축ㆍ시가(橋梁)·축목(畜牧)·우(牛)·마(馬)·여(驢)·안(鞍)·조(槽)·시정(市井)·상고(商)·은(銀)·전(錢)·철(鐵)·재목(材木)·여복(女服)·장희(場戱)·한어(漢語)·역(譯)·약(藥)·장(醬)·인(印)·전(氈)·당보(塘報)·지(紙)·궁(弓)·총시(銃矢)·척(尺)·문방지구(文房之具)·고동서화(古董書·) 등 39항목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기구와 시설에 대한 개혁론을 제시ㆍ설명했다. 외편에는 전분(田)·분(糞)ㆍ상·상과(桑)·농잠총론(農蠶總論)·과거론(科擧論)·북학변(北學辨)·관론(官論)·녹제(祿制)·재부론(財賦論)ㆍ북학변·통강남절강상박의(北學辨通江南浙江商舶議)·병론(兵論)·장론(葬論)·존주론(尊周論)·오행골진지의(五行汨陳之義)·번지허행(樊遲許行)·기천영명본어역농(祈天永命本於力農)·재부론(財賦論) 등 17항목의 논설을 수록하여 농업 기술의 개량과 국내 상업 진흥, 대외 무역의 이점을 설파하고 있다. 북학을 가리켜 저자는 '생활과 백성에 직결된 학문'이라 주장하면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할 방안으로 상업 발달에 따른 유통 경제를 활성화시켜줄 수 있는 교통수단인 '[[수레]]'의 사용과 규격화된 크기의 '[[벽돌]]' 이용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고, 실제로 저자 자신이 직접 벽돌 만드는 기술을 연구해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저자는 [[성리학]]에서 강조하던 농본억말(農本抑末)과 같은 상업 억제정책을 반대하며 적극적인 상업 장려와 그 바탕이 되는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경제란 우물 같은 것으로 계속 써주지 않으면 말라버린다.", "쓸 줄 모르면 만들 줄도 모르고, 만들 줄을 모르면 민생은 나날이 곤궁해질 것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전통시대의 미덕이었던 검약이나 소비 억제보다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인 소비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극적인 소비를 통해 생산을 증대시키자는 그의 사상은 근대 경제학 이론과도 흡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청과 통상하여 국력을 기른 뒤 여러 나라와도 통상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는 당시 북학파들의 주된 의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