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여운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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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료에 보이는 대로 박갑동은 '김일성의 돈을 받아서 근로인민당을 만들었다'는데, 이건 명백한 왜곡이고, 사실이 아닙니다. 여운형은 1945년 11월 조선인민당을 만들었는데, 이때는 미군정의 간접 도움은 받았지만 김일성의 도움을 받은 일은 없고, 근로인민당은 1947년 4월경에 조직되는데, 그 두어달 뒤에 여운형은 암살되었습니다. 3당합당 문제로 협상하던 북한 김일성과의 관계는 1946년 말 몽양이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단절되었고, 1947년 4월경 조직되는 근로인민당은 북한의 자금이 아니라 실제로는 미군정의 도움으로 탄생된 것입니다.(이건 이정식 교수가 쓴 단행본 참고해보십시오.) 여운형은 두 딸의 소련유학을 김일성에게 맡긴 것은 사실이지만, 김일성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얻어쓴 적은 없습니다. 다만 김일성과 협상한 일이 있다 하여 우파에서 그렇게 주장한 것이죠.
::그리고, 제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여러서적들 찾던도중 박갑동이라는 사람에 대해 좀 찾아봤는데, 그 분은 좀 문제가 많아요. 박갑동 자기 자신이 '박헌영이 월북한 이후 조선공산당 비밀책임자'였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1970년대에 <중앙일보>에 자신의 회고록을 연재한 뒤 해방당시 좌익의 문제를 혼자 아는 것 같이 떠들고 다녔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제주 4.3 사건]]은 남로당 중앙지부의 지령에 따라 수행한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는데, 결국에는 이게 학계에서 '명백한 거짓말'이라는게 다 밝혀졌잖습니까?--[[사용자:Sienic|Sienic]] ([[사용자토론:Sienic|토론]]) 2011년 5월 2일 (월) 13:32 (KST)
 
== 친일친미 뉴또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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