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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인'''(Boer)은 '''[[아프리카너]]'''(Afrikaner)라고도 하는데, [[남아프리카]] 지역으로 이민하여 [[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사람들과 그의 후손들을 말한다. 이들은 현재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구성원중 가장 초기의 유럽출신 이민자들이었다. [[네덜란드어]] 방언에서 파생된 [[아프리칸스어]](Afrikaans)를 쓰기도 한다. 보어는 [[네덜란드]]어에서 [[농부]]를 뜻하는 말이다.
[[파일:Flag_of_Transvaal.svg|250px|thumb|트란스발 공화국의 국기]]. [[파일:Flag of the Orange Free State.svg|250px|thumb|오렌지 자유국의 국기]]
 
== 개요 ==
보어인들의 조상은 [[종교]]적으로는 [[네덜란드]]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이주한 [[장로교]] 신도들이며, [[줄루족]]등의 [[원주민]]들을 [[소총]] 등의 우세한 화기로 몰아내고 북쪽으로 확장하였다. 19세기에 그들은 [[대영 제국]]에 맞서 [[오렌지 자유국]]와 [[트랜스발 공화국]]이란 작은 두개의 나라를 세워 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다. 이러한 작은 국가는 거의 2세기 동안 존재하였으나 [[2차 보어 전쟁|제2차 보어전쟁]]([[1899년]]~[[1902년]])에서 패하여 [[영국]]에 항복하고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1877년) 원래는 케이프 아프리카너와 보어는 구별되었으나 현재는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다. 보통 보어인은 [[국수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현대의 일부 보어인들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의 성립이 억지로 강요된 것이었으며 보어전쟁 혹은 [[마리츠 반란]]([[1914년]]) 과정에서 빚어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보어전쟁 ==
트렌스발 공화국(현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전략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풍부한 [[금]]과 [[다이아몬드]] 광산이 위치하고 있다. 1900년에는 트란스발의 금 매장지대인 랜드는 세계 금 공급의 25%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러한 금광붐에 따라 새로운 영국 이주민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오이틀란데르]]'라고 불렸다. 이들이 점점 늘어 남에 따라 보어인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장로교]]에 근거한 엄격한 생활방식은 대다수가 [[성공회]]를 믿는 [[영국인]]과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았으며 [[흑인]]에 대한 영국인의 태도도 불만이었다.{{출처}}
 
결국 [[아프리카]]에서 세력을 넓히던 [[영국]]과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이것이 [[1차 보어 전쟁]]과 [[2차 보어 전쟁]]이다. 전쟁의 발달은 5년 이상 거주한 영국 이주민에게도 투표권을 달라는 요구를 구실로 한 것이었다. 보어 전쟁 당시 보어인들은 사실상 농부들에 불과했지만 [[민병대]]를 구성하여 [[영국군]]에 대항했다. 5만4천여 명밖에 안되는 소수였지만 맥심 기관총, 대포, 최신 모제르 총 등으로 무장했으며 적의 손이나 발을 맞출 정도로 뛰어난 [[사격]] 솜씨를 갖추었다고 한다. [[1900년]] 스피온 콥에서의 전투는 보어인이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은 영국군과 영국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1899년]]에 작은 국경도시 [[마페킹]](Mafeking, Mafikeng)에서 217일 동안 [[영국군]]은 보어인들에 대한 포위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하고 [[1900년]]에는 오렌지 자유국의 수도 블룸폰테인과 트란스발의 수도 [[프리토리아]]를 점령하였다. 이후 보어인들은 [[게릴라]]식 전략으로 전환하여 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영국군은 게릴라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흑인]]들과 보어인들의 거주지 3만여 가구를 소각하여 활동근거를 말살하고, 여자와 어린이 보어인들을 [[강제수용소]]에 몰아넣었다. 이는 야만적 [[학살]]을 낳은 최초의 강제수용소였으며 훗날 [[나치]]의 [[강제수용소]]의 본보기가 되었다. 모두 2만 7,927명의 비전투원 어린이와 여성이 이 수용소에서 죽었다. 어린이들과 여성들을 수용소에 죽게 한 영국군의 잘못은 고의적인 대량 [[학살]]이라기보다는 영국군의 무능력과 무감각의 산물이었다. 결국 [[보어 전쟁]]은 보어인들의 패배로 끝났다. [[1902년]] [[5월 31일]] [[베레니깅 조약]]에서 트렌스발과 오렌지 자유국은 독립을 상실하고 영국의 [[식민지]]로 병합되었으며 [[1910년]]에 [[남아프리카 연방]]이 수립되었다.
 
== 에밀리 홉하우스의 반전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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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들과 보어전쟁 ==
보어전쟁 당시 보어인들은 흑인들을 [[전쟁]]에 이용했으며, 영국군은 흑인들의 본거지를 말살하여 보어인들의 활동근거지를 없애고자 하였다. 이러한 흑인들의 전쟁피해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일어나, [[독일군]]과 [[영국군]] 모두 식민지내 흑인들을 [[전쟁]]에 강제로 이용하였다.
{{토막글|남아프리카 공화국}}
 
== 보어인의 트란스발 공화국과 오렌지 자유국의 국기 ==
* 이들 국가들은 [[영국]]에의해 강제 합병당했다.
 
[[파일:Flag_of_Transvaal.svg|250px|트란스발 공화국의 국기]]. [[파일:Flag of the Orange Free State.svg|250px|오렌지 자유국의 국기]]
 
{{토막글|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