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일본 관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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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사 ==
===8세기 ~ 17세기의 교역 ===
서기 734년 [[견당사]] 판관인 헤구리노 히로나리({{lang|ja|平群広成}})가 귀국하는 도중, 난파되어 곤륜국(崑崙国)에 표류하여 억류되었다. [[후에]] 부근에 도읍이 있던 [[참파]]였다고 생각된다. 히로나리는 그 후, 중국으로 탈출하여 [[발해]]를 거쳐 귀국하였다. 753년에는 [[견당사]] 후지와라노 기요카와({{lang|ja|藤原清河}})와 [[아베노 나카마로({{lang|ja|藤原清河}})]]가 안남의 빈 부근에 표착하였다. [[동중국해]]에서 [[남중국해]]로 남하하는 해류의 영향으로 이러한 표류 루트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인연으로 아베노 나카마로는 761년부터 767년까지 진남도호부 안남절도사(鎮南都護 安南節度使) 로서 [[하노이]]의 [[안남도호부]]에서 재임하였다.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에 걸쳐 교역국가로서 영화를 누렸던 [[류큐 왕국]]은 [[참파]]와도 우호통상을 하였다. 17세기에 와서는 주인선({{lang|ja|朱印船}})이 베트남 방면으로 진출하여, [[에도 막부]]와 북베트남의 대월 [[후 레 왕조]]와 남베트남의 구엔 왕조와도 외교문서를 교환하고, 출인선이 줄입하였다. [[호이안]]에는 일본인 마을도 형성되어 있었다. 주인선은 또한 남으로도 진출하였던 참파에서도 당선(중국 배)과 만나 교역을 행하였다. 베트남의 통화의 명칭인 동은 베트남의 주요 통화였던 동전을 의미하는 베트남어 "동티엔"에서 유래한다. 일본의 동전 간에츠호({{lang|ja|寛永通宝}})는 그 소재의 양호함으로, 동남아시아의 기축통화의 하나로서 유통되어, 국제 거래의 결제에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