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거포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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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급 충격 ===
 
 
당시 전함들의 중장갑을 가볍게 무력화시키는 12[[인치]] 함포 10문으로 구성된 화력과 당시로써는 전함보다 장갑과 무장이 덜한 [[순양함]]의 속도였던 20[[노트 (속력)|노트]](knot) 이상의 경이적인 전투속도에, 당시 전함들의 주무장이었던 8인치급 함포 포격을 버틸 수 있는 중장갑으로 이루어진 이 "드레드노트"라는 전함의 등장은 한 마디로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항해시대]] 이후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논리로 자국의 해군력 증강에 힘을 쏟았던 각국은, [[항공모함]]의 함재기나 [[미사일]]을 발사하여 공격하는 순양함 등이 동원되는 현대의 [[해전]]과는 달리 당시까지의 모든 해전이 함대함 전투로 승패가 갈렸기 때문에, 함대전의 주력인 전함의 공격력과 방어력 및 보유대수로 각국의 해군력 수준을 비교하며 자국이 좀더 유리한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전함건조 및 개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나 객관적인 데이터에 의하여 이 드레드노트를 상대로 함대함 전투를 버틸만한 자국 전함이 전혀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었다. 해군력의 주력이었던 기존 전함들의 가치를 일거에 잃게 하기에 충분할만큼 이 드레드노트는 가히 충격적인 전함이었다.
 
이에 대한 충격으로 각국은 드레드노트를 기준으로 하여 자국의 주력전함을 자국의 해안선 형태나 주변국의 해군 전력요소 등 현실을 반영한 약간의 변형이 가미된 전함으로 건조하여 해군력의 강화를 꾀하게 되었고, 이러한 형태의 전함을 통칭하여 '''드레드노트형 전함''' 혹은 '''노급전함'''(일본식표현)이라고 한다. 이로써 각국의 해군 군비 경쟁은 사실상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셈이 되었고, "(노급전함을 기준으로)그보다 큰 배를, 그보다 큰 포를...!"라는 인식이 각국 수뇌부에 뿌리깊게 자리하게 되었다. 이를 흔히 '''"거함거포주의"'''라고 하게 되었다.
 
 
=== 군비 경쟁 ===
특히원래 영국 해군은 다수의 전함을 보유하는 등 드레드노트 등장 이전부터 세계 1위의 해군국으로, 드레드노트를 보유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열강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점하나 싶었으나, 이 후 [[빌헬름 2세]] 치하의 [[독일 제국]]과의 노급전함 건조 경쟁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존의 우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영국이 노급전함을 1대 만들면 독일은 2대를 만드는 식이었으므로 서로 지지않으려는 영-독 양국간의 이러한 군사적 긴장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에 이르는이르기까지 간접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특히 영국 해군은 다수의 전함을 보유하는 등 드레드노트 등장 이전부터 세계 1위의 해군국으로, 드레드노트를 보유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열강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점하나 싶었으나, 이 후 [[빌헬름 2세]] 치하의 [[독일 제국]]과의 노급전함 건조 경쟁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존의 우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영국이 노급전함을 1대 만들면 독일은 2대를 만드는 식이었으므로 서로 지지않으려는 영-독 양국간의 이러한 군사적 긴장은 [[제1차 세계 대전]] 발발에 이르는 간접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도 승전국들을 중심으로 전함 위주의 해군 군비경쟁은 계속되었고, 이에 유지비 등 심적, 물적 부담을 느낀 영국의 제안에 따라 [[1922년]] [[워싱턴]] [[해군 군비 제한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주요 열강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의 주력함 보유 비율이 10:10:6:3:3으로 고정되었고, 기존 함정의 대량 파기 및 신규함정의 건조 제한을 규정하였으며, 신조함(新造艦)의 크기 및 화력 상한선이 각각 35,000톤([[배수량]]기준) 및 주포 구경 16인치로 정해짐으로써 양 세계대전 사이동안 열강의 해군 전력은 정체되어 이른바 <해군의 휴일>을 맞았으나, 실상은 조약의 내용에 들어있지 않았던 그 외의 부분에서 보조 전력으로 더욱 치열하게 군비 경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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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항공모함의 건조로, 사실 이 시기에 건조된 항공모함들은 대형 순양함이나 전함으로 건조 중이던 선체를 주력함 보유 쿼터로 인해 완성시킬 수 없게 되자 [[워싱턴 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이 인정된 것들이었다. 일찍부터 해군에 의한 항공기 운용에 관심 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주창으로 일본은 특히나 적극적으로 항공모함 건조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러한 보조함 건조 경쟁의 가속 또한 나중에 문제시 되어 이를 해소 하고자 [[1930년]]에 보조함 제한 규정을 마련한 [[런던]] 해군 군비 제한 조약(1차)이 또다시 조인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두 번에 걸친 해군 군비 제한 조약이 자국에 매우 불리하며 또한 인정된 보유량으로는 [[태평양]] 전체로 확대하고자 하는 지배야욕 앞에서 사실상 충돌중인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937년]]의 [[런던 해군 군비 제한 조약]](2차)에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군축조약]] 자체가 사실상 의의를 잃어버렸고, 이로써 <해군의 휴일>은 종료되었다. 이후 각국은 조약을 무시하고 제한을 벗어나게 되며, 독일의 [[비스마르크호|비스마르크]]나 일본의 [[야마토]], 미국의 [[아이오와호|아이오와]]와 같은 거함거포주의의 초거대 전함이 등장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맞이하게 되었다된다.
 
 
=== 항모기동전술의 시작과 거함거포주의 종말 ===
 
 
=== 항모기동전술의 시작과 거함거포주의 종말 ===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괄목할 만한 무기의 개발 및 전술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노급 충격"'''에 비견될만한 것이 해전에서의 항공기 운용, 즉 '''"항모기동전술"'''의 시작이었다. 서로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거리에서 [[레이더]]로 확인하고 서로의 함재기를 발진시켜 군함들은 서로간 포격은 한번 교환해 보지도 않고 비행기가 군함들을 공격하게 하여 적국의 군함을 퇴각시키는 방식의 해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특히 [[일본 해군]]과 [[미국 해군]]이 맞붙은 [[태평양 전역]]은 일본 해군의 [[진주만 공습]]부터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등 거의 모든 해전에서 항공전이 해전을 대리하여 승패가 갈리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애시당초 주포 사거리가 항공기의 비거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전함은 주포가 아닌 보조무기인 대공포로 다가오는 적 항공기를 요격하는, 한 마디로 순양함이나 [[구축함]]이면 충분할 활동 밖에 할 수가 없었고 건조비나 유지비 등 돈만 잡아먹는 무용지물이 되어 이러한 거함거포주의는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는 거함거포주의를 주장하는 국가나 단체도 없고 각국의 해군 역시 전함의 신규 건조는 커녕 보유했던 전함 전체를 전역시키고 폐기하는 실정이다. 다만, [[미국 해병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나 [[필리핀 상륙작전]],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처럼 대규모규모를 불문하고 [[상륙작전]]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거포의 전함 몇 척으로 포격을 해주는 것이 항공기나 미사일 등을 운용하는 것보다 비용문제 등 여러모로 이롭다는 이유로 아이오와급 전함 몇 척 정도는 현역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3면이 바다인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일이지만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전역 자체를 [[DMZ]] 주변으로 한정시켜축소하여 [[육군]]이나 [[공군]]만이만으로 전쟁하는 것으로 끝날한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서로간 공세전환이나 진격저지를진공저지를 위해서라도 규모를 불문하고 남북 모두 상륙작전은 불가피하다. 특히나 같은 [[황해]]에 근접해 있는 서로간 [[수도]] 우선점령은 아예 전쟁 자체를 승리로 끝낼 수도 있다. 전쟁 초기에 많은 방해가 있겠지만 이를 잘 넘기고 상륙작전을 성공한다면 [[해안]]에서 직선거리로 [[평양]]은 40여 킬로[[미터]], [[서울특별시|서울]]은 30여 킬로미터만 전진하면 경계를 통과하여 개인화기로도 목표물을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그 사정권안에 포함시킬 수 있게된다. 점령까지는 무리일지라도 수도근방에서의 전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적국당사국 국민들에게 패배감을 심어주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이끌어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리한 조건을 내걸고 종전을 강요할있다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민국과주변국과의 비슷한외교적 지리적상황이 상황에좋다고 있는 몇몇 국가에서는없는 주변국과의바다를 여러접한 외교적몇몇 상황국가들 중에서중에서는 이러한 전시를전시상황을 고려하여 거포전함의 소규모 운용을 상정하고 검토중에 있다.
 
{{토막글|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