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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에 부민관은 일제의 전쟁독려를 위한 정치집회를 위하여 사용되기도 하었다. [[모윤숙]]과 [[이광수]]는 부민관에서 일제의 전쟁에 협력하라는 연설을 하였다.
 
1945년 7월 24일에 부민관에서는 [[박춘금]]의 '아시아민족의 해방' 강연회와 '남년청년 분격웅변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는데, [[조문기]], [[류만수]], [[강윤국]] 등이 설치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한 명이 즉사하고아수라장이 수십 명이 다쳤다되었다. 이것을 [[부민관 폭파 의거]]라고 부른다.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이 부민관 앞에 서있다.
 
해방 후 미군 사령부가 사용하였고, 한국전쟁 때 서울수복 이후부터 1975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을 하였다. 이후 [[세종문화회관]] 별관로 이용하다가 지방자치제 확대 실시와 함께 서울시의회가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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