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학 (1891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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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학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다가 1959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내용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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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학'''(崔昌學, <small>일본식 이름: </small>松山昌學, [[1890년]] ~ ?[[1959년]] [[10월 12일]])은 [[일제 강점기]] 및 광복 후 [[대한민국]]의 광공업 분야 기업인이다. [[일제 강점기]]에 금광을 개발하여 부를 축척했고, 광복 뒤에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에게 자신의 별장인 [[경교장|죽첨장]]([[경교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평안북도]] 출신.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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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는 등 최창학의 부일 협력 행위에 대한 인식은 있었으나,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1945년]] 12월 조선광업중앙관위원회에 인계이사로 참여하여 일본인 소유였던 광산의 관리와 인계에 관여했고, [[1949년]] 10월 제2차 전국광업자대회 준비위원으로 선정되는 등 광공업계에서 계속 활동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암살되자 몇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경교장]]을 반납받았다.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실종되면서 경교장은 그의 유족들에 의해 처분, 여러 손을 거쳐 [[강남삼성병원]]의 소유가 되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중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특별시|서울]]에 남아있었으나 무사히 살아남았다. [[1955년]] 12월에는 세금 포탈 혐의로 치안국에 구속되었으나,<ref>{{뉴스 인용 |제목 = 崔昌學氏拘束(최창학씨구속) 利殖令等違反嫌疑(이식령등위반혐의)|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512070020920301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5-12-07&officeId=00020&pageNo=3&printNo=10110&publishType=00020|출판사 = [[동아일보]]|저자 = |쪽 = 3면|날짜 = 1955-12-07|확인날짜 = }}</ref> [[1957년]]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 해 [[오산고등학교 (서울)|오산중·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五山中高理事長(오산중고이사장)에 崔昌學氏(최창학씨)가就任(취임)|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02060032920302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02-06&officeId=00032&pageNo=3&printNo=3512&publishType=00020|출판사 = [[경향신문]]|저자 = |쪽 = 3면|날짜 = 1957-02-06|확인날짜 = }}</ref> [[1959년]] [[10월 12일]] 69세를 일기로 수도의과대학(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 = 崔昌學氏別世(최창학씨별세)|url =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910140020910301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59-10-14&officeId=00020&pageNo=3&printNo=11513&publishType=00010|출판사 = [[동아일보]]|저자 = |쪽 = 3면|날짜 = 1959-10-14|확인날짜 = }}</ref>
[[1949년]] [[6월 26일]] [[김구]]가 암살되자 몇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경교장]]을 반납받았다.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실종되면서 경교장은 그의 유족들에 의해 처분, 여러 손을 거쳐 [[강남삼성병원]]의 소유가 되었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중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특별시|서울]]에 남아있다가 납북되었다.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