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훈 (언론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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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월 18일]] 《[[대한매일신보]]》 사원으로 입사했으며 [[1908년]] [[5월 28일]] 《대한매일신보》 시사평론 담당자로 임명되었다. [[1909년]] [[11월 30일]] 《한성신보》 사원으로 입사했고 [[1910년]] [[6월 14일]]부터 [[8월 28일]]까지 《대한매일신보》([[1910년]] [[5월 21일]] [[통감부]]가 매수한 뒤부터 통감부의 기관지가 됨)의 발행인 겸 편집인을 역임했다.
 
[[1910년]] [[8월 30일]]부터 [[10월 21일]]까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발행인 겸 편집인을 역임했으며 [[1916년]] [[3월 4일]] 《매일신보》에 지령 3,000호 기념사인 《원 축원축 삼만호(願 祝 三萬號)》를 기고했다.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