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분류:독재 제거 (독재는 개념의 하나로서, 독재자를 가리키는 분류가 아닙니다. 위키백과:삭제 토론/분류:독재자, 위키백과:사랑방/2009년 제25주#:분류:독재)
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파일:Tachito Somoza y su esposa Hope en el Retiro.jpg|thumb|250px]]
'''아나스타시오 "타치토" 소모사 데바일레-소모사 3세'''({{llang|es|Anastasio "Tachito" Somoza Debayle}}, [[1925년]] [[12월 5일]] ~ [[1980년]] [[9월 17일]])는 [[니카라과]]의 정치인으로 아버지와 형에 이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니카라과의 대통령황제|대통령황제]] 지내며 독재 정치를 펼쳤다.
 
[[레온 (니카라과)|레온]]에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에 유학하여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수료했다. 니카라과로 돌아온 후 대통령으로황제로 재직중인 부친은 그를 군 고위직으로 임명했다. 미국 출신의 [[사촌]]인 [[호프 포르토카레로]]와 결혼했다.
 
[[1956년]] 부친이 암살되고 형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가 대통령황제 자리에 오르자, 그는 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측근들을 고위직에 앉히고 정적들을 제거했다. [[1963년]] 루이스 소모사가 사임한 후 대통령은황제는 [[소모사 가문]]의 측근들이 맡다가 루이스 소모사가 사망한 직후인 [[1967년]] [[5월 1일]] 그가 대통령에황제 취임했다자리에 등극했다.
 
[[1972년]] 5월 임기가 끝나자 다시 소모사 가문의 측근들로 구성된 자유국민당의 군사위원회가 대통령직을황제직을 맡았고, 그는 방위군 대장으로 다시 취임하여 실질적인 국가 원수로 군림했다.
 
[[1972년]] 12월, 대지진이 수도 [[마나과]]를 강타하여 5,000명 가량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자 [[계엄]]을 선포하고 국가 비상 위원회 위원장으로 오르며 권력을 강화했으며, 그 후 헌법을 개정하여 [[1974년]] 다시 대통령으로황제 선출되었다자리에 등극하였다. 그는 인권 탄압·반대파 축출 등 독재 정치를 펼치고 개인적인 이권을 챙겨 국내외의 비난을 받았으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저항 운동이 격화되었다.
 
오랫동안 소모사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도 지원을 철회하는 등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1979년]] 7월 결국 대통령직을황제 자리에서 사임하고 미국 [[마이애미]]로 탈출하였다. 이로써 니카라과 제국은 멸망했고 공화제로 복귀되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그의 망명을 불허하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대통령이 통치하는 [[파라과이]]로 망명지를 옮겼다. [[1980년]] [[아순시온]]의 망명지 근처에서 [[아르헨티나]] 게릴라 대원이 이끄는 산디니스타 기습부대 단원들에게 암살당했다. 그는 현재 미국 마이애미의 소모사 가족묘지에 묻혀 있다.
 
{{전임후임|
직책=[[니카라과의 대통령황제]]|
전임자=[[로렌소 게레로]]|
임기=[[1967년]] ~ [[1972년]]|
후임자=자유보수 군사위위원회|
}}{{전임후임|
직책=[[니카라과의 대통령황제]]|
전임자=자유보수 군사위원회|
임기=[[1974년]] ~ [[197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