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사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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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옥사: 왕세제 대리청정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고, 경종시대에 남인은 정계에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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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인옥사 ==
그 후 소론의 [[김일경 (1662년)|김일경]]·[[목호룡]] 등이 [[1722년]](경종 2년) 음력 3월 임금을 죽이려는 역적이 있다고 고해 바쳤다. 임금은 즉시 정국(庭鞠)을 열고 목호룡이 역적이라고 지적한 [[정인중]](鄭麟重)·[[김용택 (문신)|김용택]](金龍澤)·[[이천기]](李天紀)·[[백망]](白望)·[[심상길]](沈尙吉)·[[이희지]](李喜之)·[[김성행]](金省行) 등 60여 명을 잡아들였다. 백망은 심문을 당하면서 이것은 세력을 잃은 소론이 왕세제 연잉군을 모함하려고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당시 심문을 담당하고 있던 소론은 이를 묵살했다. 이리하여 이천기·이희지·심상길·정인중·김용택·백망·[[장세상]](張世相)·[[홍의인]](洪義人) 등이 죽임을 당했다.
 
== 추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