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무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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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의 초기는 황친 세력을 대표하는 나가야왕(長屋王)이 정권을 맡고 있었다. 당시 후지와라 집안은 그들 일족인 고묘코(光明子)가 황후로 세워지기를 바랬지만, 일찌기 [[지토 천황]]의 사례에서도 보이듯 황후는 남편인 천황 사후 '대리' 천황으로서 즉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황족이 아닌 자는 황후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다. 때문에 나가야왕은 고묘코가 황후가 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덴표]] 원년([[729년]])에 나가야왕의 변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가야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반대 세력이 없어지면서 고묘코는 황후가 될 수 있었다. 이는 황족이 아닌 자로서 황후로 책봉된 최초의 사례였다.(오늘날에는 고묘코를 황후로 삼기 위해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나가야왕을 제거하기 위한, 후지와라 일문의 4형제가 꾀한 사건으로 보고 있다. 이들 4형제는 모두 후지와라노 후히토의 아들로 고묘코와는 형제지간이었다.)
 
그러나 [[덴표]] 9년([[737년]])에 역병이 돌면서 후지와라 4형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정부 고관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고, 나가야왕의 친아우인 스즈카왕(鈴鹿王)이 지태정관사(知太政官事)로 임명되면서 가까스로 정부 체재가 정돈되었다. 덴표 12년([[740년]])에는 [[진제이규슈|진제이(鎭西)]]의 [[다자이후]]에서 후지와라노 히로쓰구(藤原広嗣)의 난이 일어나고 있다.
 
=== 후지와라노 히로쓰구의 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