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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평왕'''(楚 平王, ? ~ [[기원전 516년]])은 중국 [[춘추시대]] [[초 (춘추 전국)|초나라]]의 국왕(재위 : [[기원전 528년]] ~ [[기원전 516년]])이다. 성은 미(芈), 씨는 웅(熊), 휘는 기질(弃疾)이며, 초왕 즉위 후에 거(居)로 개명하였다. [[초 공왕]](楚共王)의 다섯번째 아들이며, [[초 강왕]](康王), [[초 영왕]](楚 靈王), 자오(訾敖,공자 비), 자석(子晳)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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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무기는, 이 사건으로 태자 건이 자신에게 원망을 할까 무서워하여 초 평왕에게 태자 건이 자신에게 중상모략을 하였다고 거짓을 고했다. 이 때문에, 초 평왕은 국경 수비를 하라는 명령으로 변방으로 보내고, 태자 건을 멀리했다.
 
그 후도 비무기는, 태자 건이 초 평왕에게 태자비를 빼앗겼던 것에 앙심을 품고, 반란을 음모하였다고, 비무기는 초 평왕에게 말하였다. 이 때, 태부 오사(伍奢)에도 태자를 잘못 가르킨가르친 죄로 물어 평왕은 오사를 잡았고 그의 아들 오상(伍尙), [[오자서]]도 소환해서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오자서는 초 평왕의 소환요구에 거부하여 오나라로 망명하였고, 그 때문에 오사, 오상 부자를 처형했다. 아버지와 형이 처형된 것이 원인이 되어 오자서의 초나라의 대한 원망의 불씨가 되어, 동시에 평왕의 건강이 쇠약해져 오나라의 침공을 막을 수 없었고, 초나라가 쇠퇴하게 되었다.
 
[[기원전 516년]] 6월에 병에 걸러 사망하고, [[기원전 506년]] 백거 전투로 오나라가 초나라의 수도 영도을 점령했을 때, 오자서는 초 평왕의 능을 도굴하여, 평왕의 시체를 채찍으로 300번 때렸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