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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 금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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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금정동은 [[과천군]] 남면 금정리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시흥군]] 남면 금정리로 되었다. 금정동은 원래 ‘큰 샘’이 있었기 때문에, ‘금우물’·‘금물’·‘금정’이라 하였는데, 쟁골, 느티울, 벌금정, 그릇점을 병합하여 금정리라 하였다. [[1979년]] [[5월 1일]] [[군포읍]] 금정리로 개칭되었다가, [[1989년]] [[1월 1일]] 군포시 승격과 동시에 군포시 금정동이 되었다. 일설에는 이 마을은 벌판에 자리 잡은 마을 어느 곳이나 파기만하면 물이 잘 나와 물긷는 여인들의 옷을 적신다하여 금정리라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또 다른 기원으로는 [[정조대왕]]이 [[수원]] [[현릉원]]에 원행할 때 [[군포천]]가의 벌금정 큰우물에서 물을 마시다가 옷깃을 적시었으므로 금정이라 하였다고도 한다.<ref>[http://www.gunpo21.net/dong05_gum/about/guidance/about_guidance_01.jsp 금정동 소개], 2012년 5월 10일 확인</ref>
 
금정1동은 교통의 요충지역으로 경수전철 및 [[국도 제47호선]]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으며, 주거·공단지역으로 생활권이 양분되어 있어 생필품 제공 및 주거기능을 분담하고 있다.
 
금정2동은 [[1989년]] [[1월 1일]] 군포시로 승격되면서 그전 당리 (堂里) 일부와 부곡리(富谷里)를 병합하여 금정2동이라 하였으며, 당리(현 당동)과 부곡리(현 부곡동)은 금정2동의 법정동이 되었다.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의 이원화로 행정수요가 배가되었으며 금정지구 택지개발사업과 관련한 유입인구 증가와 복합적인 주민 계층의 분포로 다양한 주민 정서가 내재되고 있다. <ref>[http://www.gunpo21.net/dong02_gun2/about/guidance/about_guidance_01.jsp 금정2동 소개], 2012년 6월 3일 확인</ref>
 
==법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