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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사쓰마-조슈번이 지배하던 군부(군벌)에서 조슈출신으로 육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쓰라 타로]]의 3차 내각이 조직되었다. 이 가쓰라 타로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또 중의원 의원인 [[오자키 유키오]]와 [[이누카이 츠요시]]가 사쓰마-조슈의 번벌(藩閥) 정치로서 가쓰라 내각을 비판하였다. 그래서 [[1912년]] "벌족타도, 헌정옹호"의 기치를 내걸고 제1차 호헌운동이 발전되어 제3차 가쓰라내각은 조각 53일만에 총사직하였다.
 
이어서 [[입헌정우회]]를 여당으로 하는 [[야마모토 곤베에]] 내각은 군부대신의 현역무관제를 폐지하는 등 군부의 내각에 대한 입김을 약화시키려는 개혁에 착수하였으나, 해군고관의 수뢰(收賂)사건([[지멘스 사건]])이 터지자 다시 국민의 분노로 총사직할수밖에총사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1914년]] 7월, [[사라예보 사건]]을 기화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고, 제2차 [[오쿠마 시게노부]] 내각은 [[영일동맹영일 동맹]]에 근거하여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를선전 포고를 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이것으로 일본의 국제협력의국제 협력의 분위기가 높아지고, 민주주의·자유주의 운동도 차츰 격화되었고, [[러시아 혁명]]과 [[독일 11월 혁명]]은 이러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다.
 
여기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일본 제국 사회와 경제는 크게 번영하였는데, 이 시기에 해운업이나 상업 활동 활발로 [[나리킨]](벼락부자)가 되었던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