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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일진회 회원이 되면서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활발해진 의병 항쟁 탄압을 위한 〈거의선언서〉 발표에 동참하는 등 [[친일파]]로 활동했다. 일진회 이름으로 발표된 〈거의선언서〉는 의병 운동을 계속하면 살육하겠다는 협박을 담고 있는 문서이다. 특히 최영년은 의병을 폭도로 규정하고 이들의 운동을 암매(闇妹)하다고 비하한 〈경고지방폭도문〉을 직접 작성해 반포하기도 했다.
 
[[1909년]]에는 [[송병준]] 계열의 《[[국민신보]]》 주필을 거쳐 제4대 사장에 임명되었다. 일진회 기관지 격인 국민신보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을 촉구하는 일진회의 병합 청원 운동을 지원하는 논설을 실어 《[[대한매일신보]]》로부터 “난적배”로 지칭되던 친일 매체였다. 《[[대한계년사]]》에 따르면 이때 송병준이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한석진]]을한석진을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최익현]]의 7촌 조카를 자처하는 최영년을 사장에 앉혔으며, 한학에 밝고 글재주가 뛰어난 최영년이 각 기관에 보내는 병합 청원 취지의 글을 도말아 작성하여 “침 뱉으며 욕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만큼 많은 비난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최영년은 국민신보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일진회 정견협정위원을 지내고 [[이토 히로부미]] 추도를 위한 단체에 참가했으며, 일진회의 건의서 작성에도 가담했다. [[1910년]]에는 [[이용구]] 계열의 친일단체인 [[대한상무조합]] 본부장에 임명되었고, [[1912년]] 한일 병합에 세운 공을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