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승 (화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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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인승이 작품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은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 8년간 전쟁을 치르던 기간이었다. 그의 인물화에도 정치색이 짙게 깔리게 되었다. 이 기간 중 김인승은 〈간호병〉(1944), 〈조선징병제실시기념화〉(1943) 등 친일 작품들을 남겼다. 수채화인 〈간호병〉은 [[조선식산은행]] 사보인 《회심》(會心)의 속표지화로, 군복 차림의 일본군 간호병을 묘사하고 있다. 〈조선징병제실시기념화〉는 친일 미술인 모임인 [[단광회]]에서 집단 제작한 대작이며, 전쟁 지원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대표적인 친일 미술 작품이다.
 
[[1940년]]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황기 2000년 봉축기념전'에서 입선하였고, 몸은 비록 후방에 있지만 미술로서 전쟁을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열린 시국 전람회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추천 작가로도 이름을 올렸다. [[김기창 (화가)|김기창]], [[심형구]], [[장우성]] 등이 반도총후미술전의 추천 작가들이다. 그는 이들중 심형구와는 도쿄미술학교 시절부터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동생 김경승과 함께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어용 친일 단체로 당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인 [[계광순]]이 이사장을 맡은 [[조선미술가협회]]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서양화부 평의원이었고, 김경승은 조각부의 평의원을 맡았다. 이 단체는 다른 분야 친일 예술 단체와 함께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로 들어가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바치는 일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