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동 (인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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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부 부내면 대정리(大井里) 지역으로, [[1914년]]에 [[부천군]] 부내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에 인천부에 편입되어 소화정(昭和町)이라고 하였다. [[1946년]]에 부평동으로 개칭하였고, [[1950년]]에 부평1∼3동으로 분동하였다. 1970년에 부평1동을 부평1동 동부동과 중부동으로, 부평2동을 부평2동과 동수동으로 분동하였다. [[1977년]]에 동부동을 부평4동으로, 중부동을 5동으로, 서부동을 1동, 부평2동과 동수동을 합쳐 6동으로, 부평3동과 십정2동을 합쳐 부평3동으로 개칭하였다. 1990년에 부평3동을 부평3동과 [[산곡동]]으로 분동하였다. [[1995년]] [[3월 1일]]에 북구에서 명칭이 바뀐 [[부평구]]에 편입되었다.
 
부평2동 지역은 ‘삼릉’([[미쓰비시]])로 불러 오고 있다. 일제의 대륙침공 야망에 따라 군수공장을 세우면서 종업원 사택을 지어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자 '히로나까 사택'이라 하였으나, [[1943년]] [[대동아전쟁]] 무렵 공장이 [[미쓰비시 회사]]로 넘어가 '미쓰비시사택'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이 공장에 공원으로 취업되면 현지징용의 특혜를 주어 한때 징용피신처가 되기도 했다. ‘[[미쓰비시]]’이라 했던 것이 해방과 더불어 공장도 없어지고 일본 이름을 버리고 우리말로 ‘삼릉’이라 통용하다가 이제는 대다수가 삼릉으로 부르고 있으나, 현재에도 굳이 일본회사 이름인 '삼릉'이라‘삼릉’이라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ref>[http://www.icbp.go.kr/dong_main/introduction/introduction.asp 부평2동의 유래], 2012년 8월 2일 확인</ref>
 
지금의 부평 3동을 ‘신촌’이라 불러왔다. 이곳을 원래 원통천변의 초지가 무성한 벌판이었는데, 조병창의 확장 공사와 때를 같이 하여, 바로 개울 건너에 '옹중공장' 이란 군수업체가 있어 여기에 공원으로 입사하면 징용이 면제된다 하여,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사람들이 자리 잡고 살아 새로운 마을이 생기니 '새마을'이란 뜻 에서 ' 신촌'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이 지역은 준주거지역으로 지정 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계획되어 있으며, 인근에 [[백운역]]이 있고 대규모 휴식시설인 부평공원과 미군부대가 이전되면 신촌공원이 계획되어 있어 휴식시설이 갖추어진 주택지가 될 전망이다.<ref>[http://www.icbp.go.kr/dong_main/introduction/introduction.asp 부평3동의 유래], 2012년 8월 2일 확인</ref>
 
==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