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후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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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장ㆍ한수의 난 ==
 
[[광화 (후한)|광화]] 7년([[184년]]), 서량의 강(羌)족이 반란을 일으켜
호(胡)족인 [[북궁백옥]](北宮伯玉)과 이문후(李文侯)를 장군으로 추대했다.
이들은 [[변장]] (후한)|변장(邊章)]]과 한수를 끌어들여 군사들을 지휘하게 했는데,
이 때문에 변장ㆍ한수의 난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은 호강교위 영징(伶徵)과 금성태수 진의(陳懿)를 죽였다.
 
[[중평 (후한)|중평]] 2년([[185년]]) 8월 조정에서는 사공(司空) [[장온 (후한)|장온(張溫)]]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삼아 변장과 한수를 토벌하게 하였다.
당시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했던 [[동탁]]|동탁(董卓)]]이 반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자
한수는 변장과 함께 유중(楡中)으로 달아났다. 장온은 탕구장군(盪寇將軍) 주신(周愼)에게 이들을 쫓게 했다.
당시 주신의 부장이었던 [[손견]]|손견(孫堅)]]은 반란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자고 했으나 주신은 듣지 않고 유중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한수와 변장이 거꾸로 토벌군의 보급로를 차단했기 때문에 주신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한수는 변장, 북궁백옥, 이문후를 모두 죽이고 중평 4년([[187년]]) 10만 명을 거느려 농서(隴西)를 공격했다.
농서태수 이상여(李相如)는 한수에게 항복했다. 양주(涼州)자사 경비(耿鄙)는 한수를 토벌하려 했으나
적도(狄道)에서 부하에게 배반당해 죽었고, 한수는 한양(漢陽)태수 [[부섭|부섭(傅燮)]]과 싸워 그를 죽였다.
한수의 세력이 커지자 경비의 부장이던 [[마등]]|마등(馬騰)]]은 한수에게 가담하였다.
한수와 마등은 적도 사람 왕국(王國)을 자신들의 주군으로 추대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조정은 [[황보숭]](皇甫嵩)을 보내 반란군을 진압하게 했다.
황보숭이 반란군을 상대로 연달아 승리하자, 한수는 왕국을 내쫓아 죽였다.
이후 반란군의 인물들이 서로 다투면서 내부 분열로 무너졌다.
 
== 이각과의 대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