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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광해군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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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3일 (목) 17:55 판

소용 임씨(昭容 任氏, 생몰년 미상)는 조선의 제15대 광해군후궁이다.

생애

생년은 명확하지 않다. 임몽정(任夢正)의 딸이자 임취정(任就正)의 조카로, 어머니는 임몽정의 첩이다[1]. (任), 본관풍천(豊川)이다[2].

언제 입궁했는지는 그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1613년(광해군 5년)에 이미 그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입궁한 것으로 보인다. 광해군은 고례를 어기면서까지 수많은 후궁을 두었고 그로 인한 폐해도 심각했으나[3], 결국 마지막까지 함께 한 후궁은 4~5명에 불과하였고, 임씨는 그 중 한명이었다. 특히 임씨는 용모가 매우 뛰어나고 아첨을 잘 하여, 계략이 뛰어난 김개시(金介屎)와 문서 처리 능력이 훌륭했던 소용 정씨(昭容 鄭氏) 등과 함께 광해군의 총애가 "후궁에서 으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4].

한편 임씨는 인조 반정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자, 인조(仁祖)의 명에 광해군의 유배지에서 함께 있으면서 그 시중을 들었다[5][6]. 이후 그녀에 대해 폐주의 후궁이라 하여 사사가 논의되었으나, 광해군 때 이귀(李貴)와 김자점(金自點)이 고변을 당할 때 두 사람을 옹호한 공이 있어 죽음을 면하고 계속 해서 광해군의 곁에서 그 시중을 들 수 있었다[1].

임씨가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남편 광해군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다.

가족 관계

출처

  1. 《조선왕조실록》인조 3권, 1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9월 14일(신축) 1번째기사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임취정〉
  3. 《조선왕조실록》광해 130권, 10년(1618 무오 / 명 만력(萬曆) 46년) 7월 5일(신묘) 14번째기사
  4. 《조선왕조실록》광해 73권, 5년(1613 계축 / 명 만력(萬曆) 41년) 12월 30일(계축) 2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광해 187권, 15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3월 13일(계묘) 8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인조 1권, 1년(1623 계해 / 명 천계(天啓) 3년) 3월 25일(을묘) 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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