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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숙'''(王肅, [[195년]] ~ [[256년]])은 [[중국]] [[삼국 시대 (중국)|삼국시대]] [[위 (삼국)|위]](魏)의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자 (이름)|자]]는 자옹(子雍). 본관은 동해군 담현이나, 회계(會稽:현재의 저장성)에서 출생하였다. [[왕랑]](王朗)의 아들이다. 그의 딸은 [[사마소]](司馬昭)에게 시집가서 [[진 (위진)|진]](晋)의 무제 [[사마염]](武帝 司馬炎)을 낳았다.
 
== 생애 ==
아버지 [[왕랑]]이 회계태수를 지냈기에,<ref name="s13"/> 왕숙은 그 무렵에 아버지의 임지인 회계에서 태어났다.<ref>[[배송지]]: 《삼국지》 권13 종요화흠왕랑전의 주 - 肅父朗與許靖書云:肅生於會稽。</ref>
왕숙은 관리로서 때때로 상소하여 시사(時事) · 제도(制度)에 대한 견해를 진술하고 정치활동을 행하였으며, 중령장군(中領將軍), 산기상시(散騎常侍-천자에 봉사하는 중요한 고문관)가 되었다.
 
왕숙은 관리로서 때때로 상소하여 시사(時事) · 제도(制度)에 대한 견해를 진술하고 정치활동을 행하였으며, 중령장군(中領將軍), 산기상시(散騎常侍-천자에 봉사하는 중요한 고문관)가 되었다. [[태화 (위)|태화]] 4년([[231년]])에는 [[조진]]이 [[촉한]]을 치려는 것에 반대했다.<ref name="s13"/>
 
== 사상 ==
당시 학계의 일부에는 [[양웅]](楊雄)의 반신비주의(反神秘主義)를 계승하는 경향이 있었거니와 왕숙도 그 영향을 받아 젊어서[[송충]]에게서 《[[태현경]](太玄經)》을 배우고 그 주석서를 지었다.<ref name="s13">[[진수]]: 《[[삼국지]]》 권13 종요화흠왕랑전{{위키문헌|:zh:三國志/卷13|삼국지 종요화흠왕랑전}}</ref> 사상적으로는 [[가규 (후한)|가규]](賈逵, 30-101), [[마융]](馬融, 79-166)의 현실주의적 해석을 좋아했고, [[정현 (후한)|정현]]의 참위설에 의거한 논리주의적 통일해석을 피했다. 많은 [[경서]]에 주석하여 신비적인 색채를 실용적인 해석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특히 정현의 예학체계(禮學體系)에 반대하여 《성증론》을 저술하였다. 다만 《[[공자가어]](孔子家語)》를 위작하여 자신의 비판의 근거로 삼은 것은 도리어 정현의 학설의 강력하고 확고함을 증명한 것이 되었다. 이 정(鄭)·왕(王) 양 학의 논쟁은 [[육조 시대|6조]](六朝)를 통하여 학술계에 있어 남북의 대립을 야기시켰다.
 
== 친척 관계 ==
* [[왕랑]] (아버지)
** '''왕숙'''
*** 문명황후 왕원희 (딸) - [[사마소]]의 부인
*** 왕순
*** 왕건
*** 왕개 (아들)
 
== 주석 ==
<references/>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