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연 (고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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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연'''(李子淵, [[1003년]]~[[1086년1061년]])은 [[고려]] [[고려 문종|문종]]의 외척(外戚)으로, 본관은 [[인주 이씨|인주]](仁州 : [[인천]])이다.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이한]](李瀚)의 아들이다. [[현종]]의 국구이자 [[현종]] 때의 권신 [[김은부]](金殷傅)의 처조카였다. [[문종]]의 측근으로 보좌하여 추성좌세보사공신(推誠佐世保社功臣)에 녹훈되었고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와 태사(太師)와 중서령(中書令)과 감수국사(監修國史)와 상주국(上柱國)에 이르고 경원군개국공(慶源郡開國公)을 봉했으며 식읍(食邑) 二千戶를 하사하였다.
 
문종 때 내사시랑평장사에 이르러 딸 셋이 모두 문종의 비가 되었는데, 인예태후(仁睿太后)·인경현비(仁敬賢妃)·인절현비(仁節賢妃)가 그들이다. 뒤에 수태위를 겸임하고, 문하시중에 이르러 공신의 호를 받고 개부의동삼사태수 겸 중서령감수국사상주국경원개국공<ref> 開府儀同三司太守兼重書令監修國史上住國慶源郡開國公 </ref>에 이르렀다. [[최충]]과 함께 [[문종]]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자는 약충(若冲)이고, 시호는 장화(章和)이다. 사후 문종묘(文宗廟)에 배향(配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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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보 문하시중(太保門下侍中) 겸 판상서이부서(判尙書吏部事)로 치사하였다. 그뒤 추성좌세보사공신(推誠佐世保社功臣)에 봉하여지고 개부의동삼사 수태사 겸 중서령 감수국사(開府儀同三司守太師兼中書令監修國史)가 된 뒤 상주국(上柱國)의 훈위를 받고 경원군개국공(慶源郡開國公)이 되었으며 식읍 3,000호를 하사받았다.
 
이자연과 그의 자식들은 [[문종]] 집권 후반기를 주도한다.<ref name="pare1996185">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도서출판 들녘, 1996) 185페이지</ref> [[1061년]]에 [[개경]]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국립박물관에 있는 그의 묘지명에 의하면 당시 그의 나이나이는 향년 58세였다59세였다. 장화(章和)의 [[시호]]가 추서되고, 나중에 문종묘(文宗廟)에 배향(配享)하였다.
 
===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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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086년1061년 죽음]]
[[분류:고려의 문신]]
[[분류:고려의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