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다 모리노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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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다 모리노부'''(真田守信, 케이쵸 17년([[1612년]])-칸분 10년([[1670년]]))는 [[에도 시대]]의 무사이다. 어릴 적 이름은 다이하치. 후에 카타쿠라 모리노부로 개명했고, 시로베에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사나다 노부시게]]의 아들이며차남이며, 아들로 사나다 타츠노부가 있다. 호는 잇칸사이.
 
==생애==
아버지 [[사나다 노부시게|노부시게]]와 형 [[사나다 유키마사|유키마사]]는 [[오사카 전투]]에서 죽었지만 다이하치는 [[다테 가문]]의 중신 카타쿠라 시게나가의 비호를 받아 그의 가신이 되고, 사나다 모리노부로 개명한다. [[사나다 가문은가문]]은 모리노부의 할아버지인 [[사나다 마사유키|마사유키]] 때부터 도쿠가와 가문에 위협적이었던 존재였기 때문에, 모리노부의 존재가 막부에 알려지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 다테 가문은 [[1624년]]에 '다이하치는 8세 때 쿄토에서 돌팔매에 맞아 사망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모리노부의 존재를 감추었다.
 
또 [[1640년]]에 막부가 다테 가문에 모리노부의 신원을 조사하라고 명했을 때에도, 다테 가문은 모리노부가 '[[사나다 노부타다]]의 차남 마사노부의 아들'이라고 속였다(실제로는 노부타다의 차남 마사노부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 '''카타쿠라 모리노부'''로 이름을 바꾸고, 300석의 녹봉을 받아 센다이한(다테 가문의 영지)의 무사가 되었다.
 
모리노부의 아들 타츠노부의 대에 이르러 '이미 막부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사면을 받아 공적으로 사나다라는 성을 쓰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모리노부는 [[사나다 노부시게|노부시게]]의 피를 이어받은 네 아들 중 유일하게 [[사나다 가문의가문]]의 이름을 후세에 계승시킬 수 있었다(장남은 미혼, 삼남과 사남은 다른 가문의 양자가 됨). 모리노부의 후예는 센다이 사나다 가문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