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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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 ===
천문기구 제작이 끝난 후에도 장영실은 금속제련 화전
천문기구 제작이 끝난 후에도 장영실은 금속제련 전문가로 관료생활을 지고 있던 세종대왕의 [[가마|어가]]가 갑자기 부서지는 사건<ref>[http://sillok.history.go.kr/inspection/insp_king.jsp?id=kda_12403016_002&tabid=k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 1442년 3월 16일]</ref><ref>장영실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세종이 온천으로 갈 때 쓰는 가마를 만들었는데, 세자가 가마에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ref>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이를 장영실의 임금에 대한 불경죄로 간주하고 의금부에서 책임을 물어 곤장 80대와 삭탈관직을 구형했으나, 임금이 형벌을 2등을 감해 주었다고 한다. 장영실은 이후 역사에서 자취가 완전히 사라졌다.<ref>[http://sillok.history.go.kr/id/kda_12405003_002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 5월 3일]</ref> 후세에도 그의 공교한 솜씨가 간혹 회자되었다.
 
한편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에 [[아산 장씨]] 시조인 장서의 묘 바로 아래에 장영실의 가묘가 있다.
 
==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