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태그: 되돌려진 기여 각주 제거됨 시각 편집 m 모바일 웹
22번째 줄: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정립 이후 공산주의는 주로 유물론 철학에 기초한 유물사관을 전제로 하는 사상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관한 주장은 전근대에도 존재했다.
 
공산주의적 공동체나 그 실천을 강조하는 사상은 주로 [[신플라톤주의]]와 절대계(絕對界)-현상계(現象界)라고 하는 플라톤적 양분론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었으며, 철학 체계에서 객관적 관념론과 유물론의 경계에 걸쳐있었다.
 
일례로 6세기 당시 마니교의 일파인 [[마즈다크교]]는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영역에서 철저한 금욕, 계급제도의 철폐와 완벽한 평등을 추구했다. 동시에 마즈다크교는 선악 이원론과 존재론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인간의 이성적 자각, 자력을 통해 영혼의 급수를 올려 궁극적인 선으로 나아간다는 전형적인 형이상학, 신비주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마즈다크교는 종교적 의례나 예식을 모조리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오로지 인간의 내적 수련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엄숙주의적 측면이 존재했다.<ref name="maz">Wherry, Rev. E. M. (1882). ''A Comprehensive Commentary on the Quran comprising Sale's translation and Preliminary Discourse''. Boston: Houghton, Mifflin and Company. p. 66.</ref>
 
이러한 마즈다크교는 아랍 지역에서 하층민을 중심으로 무장 반란을 선동하였다. 아랍 세계에서 주류적 위치에 있던 조로아스터교와 이슬람은 마즈다크교를 마교(魔敎)라고 칭하였고, 강력하게 탄압했다.<ref name="maz"/>
 
16세기 초 급진 재세례파 신학자 [[토마스 뮌처]]도 공산주의적 사고를 나타냈었는데, 그는 당시 그리스도교가 행하던 유아 세례를 배격하고 진정한 신앙은 이성(理性)의 외적 발현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같은 개혁교회 내에서도 이교도라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는데, 뮌처는 뮐하우젠에서 빈민 공동체인 〈영원한 의회〉를 수립하였으며, 농노 반란을 지도하였다. 그는 프랑켈하우젠 전투에서 패배한 후 참수형에 처해졌는데, 이 당시에 “모든 사람은 그 능력에 따라 일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 분배받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ref>Blickle, Peter (1981). ''The Revolution of 1525: The German Peasants' War from a New Perspective''. Baltimore, Maryland: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ISBN 978-0-8018-2472-2. p. 148, 165.</ref>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사상가인 톰마소 캄파넬라는 《감각철학》, 《형이상학》 등을 통해 기존 가톨릭 기조를 거스르는 합리주의 철학을 전개하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기도 하였다. 캄파넬라는 스페인 지역에서 노예, 농노 등 그 어떠한 계급과 착취도 없는 이상적인 신정국가 건립 운동에 참여하다 발각되어 27년 동안 투옥을 당한 투쟁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모든 것이 계획되고, 똑같으며, 궁극적인 선에 도달하기 전까지 철인에 의해 통제받는 공산제(共産制)라는 미래상을. 그렸다.
 
이러한 점을 통해서 전근대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절대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확신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공산주의적 미래 지향은 인류 스스로가 개별 인간 모두에게 내재된 이성 일반을 충분히 성장시킬 수 있고, 그것을 현실 사회에서 경제 구조나 정치 구조의 형태를 갖는 논리로 풀어낼 수 있다는 이상주의와 연관된다. 이는 이후 마르크스가 절대정신을 강조하는 헤겔의 학설을 인본주의의 입장에서 강하게 고수한 것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