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흡(許洽, 1904년 9월 4일 ~ 1981년 ) ) 대한민국의 행정가다.

본관은 김해이며 구미선산 출신이다.

1904년 9월 4일 아버지 허종(許鍾)과 어머니 이녕발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남이·권태을·주류조이다.

허흡의 가계는 임은동 입향조 허돈(許暾)에서 시작한다.


<허흡의 가계도>

허임(許恁) - 허조(許祚) - 허훈(許薰) - 허숙 - 허종(許鍾) - 허흡(許洽) - 허억(許檍) - 허렴(許燫)으로 이어진다.

허흡 시장의 증조할아버지는 방산 허훈 Archived 2020년 10월 23일 - 웨이백 머신으로 경상북도 선산군 임은(林隱: 지금의 구미시 임은동)에서 출생하였다.

방산 허훈(1836~1907)은 당시 땅 3,000 마지기<약 60만평, 현시가 수백억대>를 팔아 동생 성산 허겸과 왕산 허위 Archived 2019년 12월 20일 - 웨이백 머신의 의병 창의 군자금으로 보태고 자신도 직접 진보 의병장으로 참전했었다.

허흡 시장의 부친 중산(重山) 허종(許鍾, 1883~1949)은 허훈의 장자인 허숙의 아들로 1920년 9월 결성된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에 가입하여 서로군정서의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1922년 12월 체포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조선독립운동후원의용단의 김찬규(金燦奎)·신태식(申泰植)·이응수(李應洙) 등은 재외 독립운동단체와 서로 호응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경상도 일원을 중심으로 단원의 규합과 군자금의 모집을 추진하던 중 체포되었을 때 허종도 체포되었던 것이다.

허종은 청송 광덕에서 수리 간척으로 전장을 경영하였고, 대서업(代書業)과 운송업을 겸해서 사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허종의 창의성과 사업적 자질은 조부 허훈의 실학적 정신을 계승한 것이기도 했다.

허종은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안정을 얻지 못하고 1949년 6월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은 대구시장을 역임한 허흡(許洽)이다.

허흡의 대구시장 재임기간은 1954년 10월 5일 ~ 1958년 10월 4일이다.

허흡 시장의 손자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 허소 행정관이다.

허소는 1970년생으로 고려대학교 법학대를 졸업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행정관을 역임하였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다시 청와대 행정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