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봉

일제 강점기의 관료

현기봉(玄基奉, 1855년 10월 14일(음력 9월 4일) ~ 1924년 양력 7월 7일[1])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부호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아호는 성산(星山)이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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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의 부호 가문에서 태어난 대지주였다. 1888년 구휼 활동에 나서서 불쌍한 백성을 구제했다는 기록이 있고, ‘구민제세의 대덕성자’로 추앙을 받던 사람이다.[2] 1891년 진사시에 급제했다. 영암군의 향교와 향약소에서 직책을 맡거나 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는 등 지역 유지로 활동했다. 1906년에는 영암군민의장이 되었고, 1909년에는 목포부민의장을 역임했다.

1910년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뒤 이듬해 목포부의 참사로 임명되어 식민통치에 대한 자문 역할을 담당했고,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1919년 9월 3·1 운동으로 인한 민심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의 각 도 대표 소집에 응하여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린 시국강연에서 전라남도 대표로 참석했다.

1924년 현기봉이 사망하자[1] 약 100,000명 가량의 인파가 참가함으로써 사실상의 도민장(道民葬)과 다름없었다.[2] 현준호의 3남 현영원현대그룹 회장 현정은의 아버지라 현정은에게는 증조부가 된다.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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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에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아들인 현준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3][4]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중추원 분야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세 목록에는 현준호도 함께 들어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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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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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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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준호〉. 《엔싸이버 백과사전》. 2008년 10월 12일에 확인함. 
  2. 임종국 (1991년 2월 1일). 《실록 친일파》.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서울: 돌베개. 96~97쪽쪽. ISBN 8971990368. 
  3.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6월 20일에 확인함. 
  4. 성강현 (2004년 3월 18일). “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일요시사. 2008년 6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6월 2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