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혜비 (명 태조)
혜비 곽씨(惠妃 郭氏, ? ~ ?)는 명 태조 주원장(홍무제)의 후궁으로, 명 태조의 장인이자 주군이었던 군벌 곽자흥과 그의 후처 장씨(張氏)[1][2]의 외동딸이다.[3]
행적
편집아버지 곽자흥의 세 아들들이 모두 차례로 비명에 죽어, 곽자흥의 친자녀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3] 이후 아버지의 세력을 이어받은 의붓형부 주원장을 섬겼다.[2][4]
홍무 원년 1월 4일(1368년 1월 23일),[5]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우고 황제가 되었다(명 태조).[6] 2년 후인 홍무 3년 5월 7일(1370년 6월 1일),[5] 명 태조는 곽씨를 혜비(惠妃)에 책봉하였다.[7]
홍무 4년 3월 18일(1371년 4월 4일),[5] 곽혜비는 첫 번째 아들인 명 태조의 11남 주춘을 낳았다.[8][9]
홍무 7년 7월 18일(1374년 8월 25일),[5] 곽혜비는 두 번째 아들인 명 태조의 13남 주계를 낳았다.[10][11]
홍무 9년(1376년), 곽혜비는 첫 번째 딸인 명 태조의 12녀 영가공주를 낳았다.[12][13] 그러나 구체적인 일자는 알 수 없다.
홍무 12년 4월 14일(1379년 4월 30일),[5] 곽혜비는 세 번째 아들인 명 태조의 19남 주혜를 낳았다.[2][14]
곽혜비는 그 밖에 두 번째 딸인 명 태조의 15녀 여양공주를 낳았다.[3][12] 그러나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다.
이후의 행적과 몰년은 알 수 없다.
일화
편집어떤 사람이 곽자흥 집안의 관상을 보고서 곽자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3]
“ | 댁의 따님은 반드시 대단히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3] | ” |
이 말을 들은 곽자흥은 처음에는 불쾌하게 여겼으나, 결국 그의 사후 주원장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곽씨가 혜비가 되면서, 이 말은 들어맞았다.[3]
가계
편집출전
편집-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청) 하섭(夏燮), 《명통감(明通鑑)》, 권1 전편(前編) 제1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청) 장정옥 외, 《명사》, 권122 열전 제10 중 곽자흥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청) 모기령(毛奇齡), 《승조동사습유기(勝朝彤史拾遺記))》[1], 권1 중 태조조(太祖朝) 홍무(洪武)
- ↑ 가 나 《명태조실록》 제2권, 을미세(乙未歲, 1355) 1월 24일(신사) 3번째 기사
- ↑ 가 나 다 라 마 중앙연구원 음양력 변환기
- ↑ 《명태조실록》 제29권, 홍무 원년(1368) 1월 4일(을해) 1번째 기사
- ↑ 《명태조실록》 제52권, 홍무 3년(1370) 5월 7일(을미) 1번째 기사
- ↑ 《명태조실록》 제62권, 홍무 4년(1371) 3월 18일(임인) 1번째 기사
- ↑ 《명태종실록》 제257권, 영락 21년(1423) 3월 27일(무신) 1번째 기사
- ↑ 《명태조실록》 제91권, 홍무 7년(1374) 7월 18일(신사) 1번째 기사
- ↑ 《명실록》 영종 제148권, 정통 11년(1446) 12월 12일(을사) 1번째 기사
- ↑ 가 나 다 라 (청) 장정옥 외, 《명사》, 권121 열전 제9 공주 중 태조의 열 여섯 딸
- ↑ 《명실록》영종 제258권, 경태 6년(1455) 9월 2일(갑술) 3번째 기사
- ↑ 《명태조실록》 제124권, 홍무 12년(1374) 4월 14일(경술) 1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