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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공(瓠公)은 신라 박혁거세 시절에 재상을 지낸 인물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본디 왜국 출신으로 허리에 박을 차고 바다를 건너왔다하여 표주박 호(瓠)자를 써서 호공이라고 하며,[1] 가계나 성명 등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마한에 사신으로 다녀갔다가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을 책망하는 마한왕에게 맞섰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죽임을 당할 뻔 했으나 측근들의 만류로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2]

호공이 등장한 작품편집

각주편집

  1. 김부식(1145), 《삼국사기》 〈권제1〉 혁거세 거서간條 “瓠公者未詳其族姓本倭人初以瓠繫腰渡海而來故稱瓠公” (호공이라는 사람은 그 종족과 성(姓)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본래는 왜인이었다. 처음에 박을 허리에 매고서 바다를 건너온 까닭에 호공(瓠公)이라 불렀다.)
  2. 김부식(1145), 《삼국사기》 〈권제1〉 혁거세 거서간條 “三十八年春二月遣瓠公聘 於馬韓馬韓王讓瓠公曰辰卞二韓爲我屬國比年不輸職貢事大之禮其若是乎對曰我國自二聖肇興人事修天時和倉庾充實人民敬讓自辰韓遺民以至卞韓樂浪倭人無不畏懷 而吾王謙虛遣下臣修聘可謂過於禮矣而大王赫怒劫之以兵是何意耶王憤欲殺之左右諫止乃許歸” (38년(기원전 20년) 봄 2월에 호공을 마한[에 보내 예방(禮訪)하였다. 마한왕이 호공을 꾸짖어 말하였다. “진한과 변한 두 나라는 우리의 속국인데 근년에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으니, 큰 나라를 섬기는 예의가 이와 같은가?” 〔호공이〕 대답하였다. “우리 나라는 두 성인이 일어나서부터 인사(人事)가 잘 다스려지고 천시(天時)가 순조로와, 창고는 가득 차고 백성은 공경하고 겸양할 줄 압니다. 그래서 진한의 유민으로부터 변한 ‧ 낙랑 ‧ 왜인에 이르기까지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임금님은 겸허하게 신하인 저를 보내 안부를 묻게 하였으니, 예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크게 노하여 군사로써 위협하니 이것이 무슨 마음입니까?” 〔마한〕왕이 격분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좌우의 신하들이 간언하여 말리니, 이에 돌아갈 것을 허락했다.)

외부 추가 정보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