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영

황보 영(皇甫穎, ? ~ 1047년 10월 24일)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1023년(현종 14) 음력 10월 11일(양력 11월 26일)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임명되었다.[1]

1031년(덕종 즉위년) 7월 어사잡단(御史雜端)이 되고, 9월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김영기(金令器)·이자연(李子淵) 등과 함께 비어(鯡魚)를 하사받았다.[2]

1032년 상서우승 지어사대사(尙書右丞知御史臺事)가 되었다.[3]

1034년 중추부사가 되었다.

1035년 음력 7월 13일(양력 8월 18일) 중추사(中樞使) 겸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다.

1036년 음력 8월 17일(양력 9월 9일)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었다.[4]

1041년 음력 10월 5일(양력 11월 1일) 서경유수사 참지정사(西京留守使參知政事)로서 대동강에서 어가(御駕)를 영접하였다.[5]

1041년 음력 10월 23일(양력 11월 19일)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가 되었다.[6]

1043년(정종 9)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상주국(內史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上柱國)으로 임명되었다.[7]

1047년(문종 1)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서 왕에게 “저는 후사가 없으니 외손(外孫) 김록숭(金祿崇)을 후사로 삼도록 간청합니다.”라고 글을 올려, 김록숭에게 9품 관직을 주게 하였다.[8]

1047년 음력 10월 3일(양력 10월 24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치사(致仕)한 황보영(皇甫穎)이 별세하자,[9] 국왕인 문종이 부의로 쌀 100석, 보리 50석, 베 400필, 대차(大茶) 300근, 향(香) 10근을 내려주었다.[10]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