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점
황인점(黃仁點, 1732년 ~ 1802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원이다. 화유옹주의 남편이며, 영조의 사위이다.
생애편집
호조참판을 지낸 황자(黃梓)의 아들이며, 이조판서를 지낸 황인검(黃仁儉)의 동생이다. 1751년(영조 27) 영조의 제10녀 화유옹주와 혼인하여 창성위(昌城尉)에 봉해졌다.[1]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애책문(哀册文)을 썼으며[2], 1776년(정조 1)부터 1793년까지 17년간 진하 겸 사은정사(進賀兼謝恩正使) 1회,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 3회, 동지정사 1회, 성절 겸 사은정사(聖節兼謝恩正使) 1회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청나라 수도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정조가 즉위한 1776년 음력 9월 24일 황인점은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임명되었다. 이 때, 서호수(徐浩修)가 부사(副使)로, 김이희(金履禧)가 서장관(書狀官)으로 그를 따랐다.[3]
1784년의 연경행에서 동행했던 이승훈이 《천주실의》 등 천주교 관련 서적을 반입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훗날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추궁당해 관직이 삭탈되었다.[4]
가족편집
각주편집
- ↑ 영조실록 1781 74권, 영조 27년 10월 5일 무술 3번째기사
- ↑ 영조실록 1781 127권, 영조 대왕 애책문(哀冊文)
- ↑ 정조실록 1805 2권, 정조 즉위년 9월 24일 임진 2번째기사
- ↑ 《조선왕조실록》 순조 2권, 1년(1801년) 3월 3일 3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