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 송씨
한국의 성씨
여산 송씨(礪山 宋氏)는 한국의 성씨이다.
나라 |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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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
시조 | 송유익(宋惟翊) |
중시조 | 송송례(宋松禮) |
주요 인물 | 송염, 송분, 송훈석, 송하진, 송기섭, 송기석, |
인구(2015년) | 298,231명 |
비고 | 여산송씨종친모임 |
1. 기원
편집한국과 중국 모든 송씨(宋氏)의 공통 시조(始祖)는 상(商)나라 28대 왕 제을(帝乙)의 장자이자 춘추전국시대송(宋)나라 초대 국군인 미자계(微子啓)다.
위략(魏略)에 의하면 한반도의 모든 송씨(宋氏)의 선계(先系)는 b.c 202년 중국 제(濟)나라에서 고조선(固朝鮮)으로 망명한 송씨(宋氏) 집단이라고 한다.[1]
2. 역사
편집여산 송씨(礪山宋氏)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進士)로 나라에 훈공을 세워 여산군에 봉해졌으며 은청광록대부(銀青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 使)에 추증되었다.
3. 분파
편집도시조(都始祖) : 송주은(宋柱殷)
시조(始祖) : 송유익(宋惟翊)
원윤공파(元尹公派) : 송운
수사공손(水使公孫) : 송희립
밀직공파(密直公派) : 송방영
소윤공파(少尹公派) : 송원미
지신공파(知申公派) : 송린
정가공파(正嘉公派) : 송서
충강공파(忠剛公派) : 송간
4. 인물
편집- 송자연(宋自淵): 고려 중기때 정2품(正2品) 판서(判書)를 지냈다.
- 송문림(宋文琳, 1409년 ~ 1476년): 1457년(세조 3) 친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에 책봉되고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졌다. 1472년 이조참판으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무(恭武)이다.肅靖)이다
- 송현수(宋玹壽, ? ~ 1457년) : 1454년(단종 2) 딸이 단종의 비(妃)로 책봉되자 돈령부지사(敦寧府知事)가 되고 여량군(礪良君)에 책봉되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돈령부판사가 되어 보필했다.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자 대간의 건의로 처벌이 불가피했으나 세조(世祖)가 두둔하여 무사하였다. 그러나 금성대군(錦城大君) 유가 사사되자 정창손과 양사의 주장으로 주살 당하였다.
- 송익필(宋翼弼, 1534년 ~ 1599년) : 조선 중기의 학자. 서얼 출신이기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했으나, 조선팔대문장가로 문장에 뛰어났고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 교우하면서 성리학과 예학(禮學)을 탐구하여 조예가 깊었다.
5. 족보
편집여산송씨족보(礪山宋氏族譜)는 시도유형문화재 제139호로 1991년 4월 2일 지정되었으며, 1653년 간행하였다. 현존하는 족보 중에는 17세기 이전 족보가 별로 없는 상태라 희귀본으로서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소재지는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이며, 관리는 여산송씨종친회에서 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