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토마니(일본어: 太占 / 한국 한자: 太占 (태점))는 점복의 일종이고 '太兆' (후토마니)[*](한국 한자: 太兆 (태조))'布斗麻邇' (후토마니)[*](한국 한자: 布斗麻邇 (포두마이))로도 표기한다.[1]

귀복(龜卜)에 씐 거북 배딱지 [왼쪽 ("甲龜 (2)")]과 후토마니(太占)에 씐 사슴 어깨뼈 [오른쪽 ("骨肩鹿 (1)")].

개요 편집

수사슴 어깨뼈를[2] '하하카(波波迦)'(가니와자쿠라·가바자쿠라·간바 등으로도 불리고 일본귀룽나무의 옛 이름[3])의 껍질 숯불에 구워서 그 '마치가타(町形)'(뼈 겉에 날 균열 모양[4])에 의하여 점친다[1][4][3](《고사기(古事記)》 아메노 이와야토(天石屋戶)의 단[5]). 사슴 뼈를 씀으로 '시카우라(鹿占)'로도 일칼어진다.[1] '후토'는 미칭이다.[4]

고대 일본에 있어서 해해졌다.[1] 《고사기》에서는 이자나키노 미코토(伊弉諾尊)와 이자나미노 미코토(伊弉冉尊)가 국토를 생성했을 때에 어쩌면 좋은 아이를 얻을 수 있은가고 물은바, 아마쓰 가미(天津神)가 후토마니로 점쳐서 알려 줬다고 보이다.[5]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에서 "뼈를 굽기로써 길흉을 점친다(灼骨而卜 以占吉凶)"라고 하기는 이 후토마니로 삼아진다.[3]

뒤에 이르러서 중국에서 귀복(龜卜)의 방법이 전해졌으니, 그것을 신기관(神祇官)의 우라베씨(卜部氏)기 관장해서 후토마니는 쇠퇴해 버렸다.[6][3] 그러나, 오늘날에서도 도교도(東京都)에 있는 무사시 미타케 신사(武藏御嶽神社)[7]군마현(群馬縣)에 있는 누키사키 신사(貫前神社)[8]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각주 편집

  1. 백과사전 마이 피디아 「ふとまに(太占) 후토마니[*]」(百科事典マイペディア『太占』)
  2. 대사림(大辭林) 제3판 「ふとまに(太占) 후토마니[*]」(大辞林 第三版『太占』)
  3. 일본 대백과 전서 「ふとまに(太占) 후토마니[*]」(日本大百科全書『太占』)
  4. 브리태니커 국제 대백과 사전 - 소항목 사점 「ふとまに(太占) 후토마니[*]」(ブリタニカ国際大百科事典 小項目事典『太占』)
  5. 세계 대백과 사전 제2판 「ふとまに(太占) 후토마니[*]」(世界大百科事典 第2版『太占』)
  6. 세계 대백과 사전 「うらない(占い) 우라나이[*]」(世界大百科事典『)
  7. “太占祭 武蔵御嶽神社” [후토마니제(太占祭) - 무사시 미타케 신사] (일본어). 武蔵御嶽神社. 2013년 5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太占祭” [후토마니제(太占祭)] (일본어). 武蔵御嶽神社. 2020년 1월 9일에 확인함. 수사슴 어깨뼈를 구워 난 트집으로 그 해의 농사가 잘될지 못될지 점치는 "후토마니제(太占祭)". 국내에서 2사(社)만 전승하는 희소한 신사(神事)입니다. 해마다 1월 3일 이른 아침에 실시하고 있습니다. 
  8. “貫前神社| とみおか浪漫紀行 | 群馬県富岡市観光情報” [누키사키 신사 | 도미오카 낭만 기행 | 군마현 도미오카시 관광 정보]. 《富岡市観光情報サイトとみおか浪漫紀行》 (일본어). 도미오카시(富岡市). 2009년. 2013년 7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 一之宮 貫前神社 ■” [■ 이치노미야 누키사키 신사 ■] (일본어). 一之宮貫前神社. 2020년 1월 9일에 확인함. 미토비라키제(御戶開祭)나 시카우라 신사(鹿占神事) 등 옛날부터의 제의(祭儀)가 많이 남는 것이 특징입니다.  - 현지정(縣指定)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重要無形民俗文化財) (소화(昭和)56년(1981년) 5월 6일 지정). “富岡市内の指定文化財一覧” [도미오카 시내의 지정문화재 일람] (일본어). 富岡市. 2015년 1월 15일. 2020년 1월 9일에 확인함. | 중민문(重民文) | 누키사키 신사의 시카우라 습속(貫前神社の鹿占習俗) | 이치노미야 1535(一ノ宮1535) | 누키사키 신사(貫前神社) | 소화 56년 5월 6일(昭和56年5月6日) |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