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1995년 크로아티아 특수경찰의 전투 서열

크로아티아 특수경찰의 1991년부터 1995년까지의 전투 서열에는 크로아티아 내무부 산하 총 30여개의 특수부대가 있었다. 1990년 8월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크로아티아 정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뒤 크로아티아 정부가 내무부 내 에 있던 기존 공수특수부대를 이어 특수경찰을 새로 편성하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세르브계 반군을 지원하며 개입하기 시작하자 분쟁도 점점 커져갔다. 이 분쟁은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이라는 전쟁으로 발전되었다. 크로아티아 특수경찰은 분쟁 극초기 충돌인 파크라츠 충돌플리트비체 호수 사건에 개입하였다. 당시 크로아티아는 정규군이 없었기 때문에 이 특수경찰 3천명이 크로아티아가 가진 강력한 전투부대 역할을 하였다.

크로아티아 특수경찰
Specijalna policija Republike Hrvatske
특수경찰의 견장
활동 기간1991년-1995년
국가크로아티아
소속크로아티아 내무부
역할특수작전부대
규모3,100명 이상(1991-1995년)
참전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지휘관
주요 지휘관믈라덴 마르카치

1991년 들어서 몇몇 특수경찰부대가 한데 묶여 크로아티아 국가방위군(이후 크로아티아군으로 개칭)으로 변모하였으나 특수경찰은 전쟁 내내 육군 작전을 지원하는 특수부대 역할로 작전을 계속 이어나갔다. 특수경찰이 마지막으로 대규모로 투입된 때는 1995년 8월 폭풍 작전 때로 당시 3,100명 이상의 특수경찰 병력을 투입하였다. 전쟁 기간 특수경찰 부대원 179명이 사망하였고 790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4명이 실종되었다.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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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크로아티아 민주연합(HDZ)가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1990년 크로아티아 총선거에서 사회주의 정권을 밀어내고 압승하자 크로아트인세르브인 사이 민족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1]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은 크로아티아가 공화국 내의 크로아티아 영토방위군(TO) 장비를 이용해 자체적인 군대를 세우고 유고 인민군에 대항할 수 있다고 우려하였다.[2] 예상되는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고 인민군은 영토방위군의 장비를 전부 압수하였다.[3] 1990년 8월 17일, 양 민족간 긴장이 폭발하여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이 크로아티아 내에서 세르브계가 가장 많이 사는 달마티아 고원의 크닌을 중심으로 하여[4] 리카, 코르둔, 바노비나, 슬라보니아 지역 등 여러 곳에[5] 크로아티아 정부에 반대하여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다.[1] 유고 인민군은 세르브계 크로아티아 반군의 지원을 점점 늘려갔다. 유고 인민군이 분쟁에 개입하면서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 반군 또한 강해졌다.[6]

1991년 당시 크로아티아는 정규군 병력이 없었다. 크로아티아는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 인력을 2만명으로 약 2배로 증강하였다. 이 중 가장 강력한 병력이 특수부대로 군 조직을 도입한 12개 대대 3천명의 특수경찰 병력이었다.[7]

처음으로 창설된 특수경찰부대는 1990년 9월 7일 창설된 루츠코 대테러부대(ATU)였다.[8] 이 부대는 1990년 자그레브에서 훈련받은 경찰관 중 선발 과정을 통해 꾸린 부대이다. 이 외에도 1990년 이전 크로아티아 내무부 산하의 특수부대에 근무했던 사람들 일부를 보직이동시켜 동원하기도 하였다.[9] 루츠코 특수부대의 초대 지휘관에는 마르코 루키치가 보임되었다.[8]

특수경찰은 오른쪽 소매에 견장 패치를 붙인 녹색 유니폼을 보급하여 다른 부대와 구분할 수 있게 하였다. 크로아티아 특수부대의 공식 견장은 칼 위에 번개가 그려진 모양(Mač i munja)[10]으로, 미국 육군 특전부대의 휘장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다.[11]

1991년 말에는 특수경찰의 효율적인 지휘, 통제를 위해 내무부 산하 특수경찰국을 수립하였다. 1994년에는 교육과정기획 및 감독 등 업무범위가 확대되며 특수경찰부로 확대되었다. 또한 군사 작전의 통합 및 일원화를 위해 크로아티아 공화국군 총참모부와 특수경찰이 지휘하는 특수경찰부대합동참모부가 세워졌다.[9] 스톰 작전과 같은 대형 군사작전에서 야전에 특수경찰 3,100명이 투입되었을 때 이 특수경찰들은 군 참모부 직속으로 지휘받았다.[12]

야전부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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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17일 크닌 안팎에서 일어난 세르브계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헬리콥터 3대를 가진 크로아티아 특수경찰 공수부대가 처음으로 동원되었다. 특수부대 공수부대는 1968년 창설된 부대로 당시 이 부대는 크로아티아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전투능력을 가진 부대였다. 작전 도중 유고슬라비아 공군 소속 전투기 2기가 헬리콥터를 가로막아 오굴린에 강제로 착륙하였다.[13] 이 날은 현대 크로아티아 특수부대의 첫 부대가 세워진 날로 기념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특수경찰부대가 추가로 창설되었는데 거의 대부분은 1990년 9월에서 1991년 8월 사이 세워졌다.[8][14]

아래는 크로아티아 내무부 직속으로 지휘받던 9개 특수경찰 부대였다.[15]

  • 공수부대 (1968년 창설)
  • 루츠코 대테러부대 (1990년 9월 7일 창설)
  • 투슈카나츠 부대 (1990년 10월 1일 창설)
  • 라키체 부대 (1990년 10월 5일 창설)
  • 발반돈 / 피오니르스키그라드 부대 (1990년 10월 8일 창설)
  • 쿠므로베츠 부대 (1990년 11월 29일 창설)
  • 슬레메 부대 (1991년 2월 6일 창설)
  • 비니차 부대 (1991년 4월 8일 창설)
  • 에르두트 부대 (1991년 4월 30일 창설)

아래는 크로아티아 내 각 주에서 지휘받던 21개 특수경찰 부대였다.[15] 괄호는 창설일이다.

  • 로비나츠 부대 (1990년 8월 17일)
  • 자다르 부대 (1990년 10월 15일)
  • 벨로바르 부대 (1991년 2월 23일)
  • 카를로바츠 부대 (1991년 3월 1일)
  • 오시예크 (1991년 3월 3일)
  • 빈코브치 (1991년 3월 3일)
  • 슬라본스키브로드 부대 (1991년 3월 8일)
  • 스플리트 부대 (1991년 3월 15일)
  • 시베니크 부대 (1991년 3월 15일)
  • 시사크 부대 (1991년 3월 15일)
  • 쿠티나 부대 (1991년 3월 15일)
  • 즐라타르 부대 (1991년 3월 15일)
  • 고스피치 부대 (1991년 3월 15일)
  • 바라주딘 부대 (1991년 3월 18일)
  • 리예카 부대 (1991년 4월 8일)
  • 두브로브니크 부대 (1991년 5월 5일)
  • 자그레브 부대 (1991년 7월 23일)
  • 이스트라 부대 (1991년 7월 27일)
  • 주파냐 부대 (1991년 9월 17일)
  • 포제가 부대 (1993년 3월 15일)
  • 코프리브니차 부대 (1993년 8월 1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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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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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저널 논문
뉴스 보도
기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