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

크로아티아 내 세르브인 소수민족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세르보크로아트어: Срби у Хрватској / Srbi u Hrvatskoj)은 크로아티아의 가장 큰 소수민족이다.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은 로마 카톨릭교회 신자가 대부분인 크로아트인과 달리 크로아티아 동방정교회를 믿는다.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
Срби у Хрватској
민족기
총인구
123,892명 (2021년 기준[1])
언어
크로아티아어세르비아어(세르보크로아트어의 표준어)
종교
세르비아 정교회
민족계통
근연민족 세르브계 보스니아인, 세르브계 보이보디나인, 세르브계 몬테네그로인, 세르브계 코소보인

현대 크로아티아의 일부 지역, 주로 남부 달마티아에서는 중세 전기서부터 세르브인이 거주했다고 추정된다. 현대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 세르브인은 합스부르크 군주국오스만 제국과 일련의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활발히 크로아티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페르디난트 1세 황제가 군정국경지대에 정착할 권리를 부여한 1538년 이후에도 수 차례 대이주 행렬이 일어났다. 그들은 토지세와 여러 세금을 면제받는 대가로 군복무를 수행하고 국경 방위 임무에도 참여해야 했다. 이때쯤에는 세르브인이 주로 달마티아고원, 리카, 코르둔, 바노비나, 슬라보니아, 시르미아 등지에 거주했다. 20세기 초부터는 크로아트계인 프라노 수필로와 세르브계 스베토자르 프리비체비치 둘이 이끄는 크로아트인-세르브인 연합오스트리아-헝가리해체까지 크로아트-슬라본 왕국을 통치했다.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슬로벤인 왕국(나중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됨)이 수립되면서 세르브인 수천명이 크로아티아 영토로 이주했다.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었던 크로아티아 독립국을 지배하는 우스타샤집단학살 표적이 되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고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포하면서 크로아티아에 거주하던 세르브인은 크로아티아 정부에 반기를 들고 크로아티아 내에 세르비아 크라이나 공화국(RSK)의 독립을 선포하며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지속된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이후 크라이나 공화국의 여러 지도자들이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크로아티아 육군폭풍 작전으로 세르비아 크라이나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영토는 전부 크로아티아로 재통합되었으며 약 20만명의 세르브인이 크로아티아를 탈출했다. 전후 세르브인은 고용 및 재산권 제한, 소수 언어 사용 제한 등 여러 차별적 조치와 샹황에 노출되었다. 그 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세르브인 집단학살 부정론에 관한 문제도 주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2020년 크로아티아 총선에서는 독립민주세르브인당(SDSS) 소속이자 세르브인 민족의회 의장인 보리스 밀로셰비치크로아티아의 부총리 4명 중 한명으로 선출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로아티아 정부와 세르브계 대표들이 1991-1995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을 함께 추모했다.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인 대표적인 인물로 니콜라 테슬라, 밀루틴 밀란코비치, 사바 슈마노비치, 라데 셰르베지야,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페야 스토야코비치 등이 있다. 2021년 크로아티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 인구는 총 123,892명(전체 인구의 3.2%)으로 이들은 크로아티아의 헌법에 따라 소수민족으로 규정되며 크로아티아 의회에서 3석의 별도 상임의석을 부여받는다.

총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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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은 전통적으로 세르비아 정교회을 믿고 세르비아어 키릴 문자를 사용하며 군사주의적 역사를 가졌으며, 현대 와서는 언어문학, 시민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와 민족적 지위 및 국가조직에 대한 관심, 유고슬라비아 해방 기념 등이 있다.[2]

2021년 크로아티아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의 인구는 전체 인구의 3.2%인 123,892명이다. 1991년 전쟁 전 인구 조사에서는 12.2%를 차지하는 581,663명으로 조사되었으나 전쟁 전후 2/3가 줄어들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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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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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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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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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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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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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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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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