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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년 백두산 분화(영어: 946 eruption of Paektu Mountain)는 화산 폭발 지수 7에 달하는 역사적으로 강력했던 화산 분화 기록이다.

946년 백두산 분화
Paektu-san.jpg
2003년 3월의 백두산
백두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백두산
946년 백두산 분화의 위치
화산백두산
날짜946년 11월 2일
유형플리니식 분화
좌표북위 42° 00′ 20″ 동경 128° 03′ 19″ / 북위 42.00556° 동경 128.05528°  / 42.00556; 128.05528좌표: 북위 42° 00′ 20″ 동경 128° 03′ 19″ / 북위 42.00556° 동경 128.05528°  / 42.00556; 128.05528
폭발 지수7
영향짧은 시간, 적은 지역의 기후 변화

기원후 1000년에 가까운 세기 말에 벌어져서 천년분화(Millenium Eruption)라고도 불린다. 날짜는 946년의 10월에서 12월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각에서는 뚜렷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발해 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아왔다. 그러나 발해 멸망은 926년으로 20년이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분화 규모편집

이 분화로 45 메가톤의 이 분출되었다. 화산재화산가스 기둥이 대기 상층에 25km 이상 치솟았으며, 주변에 100km3 이상의 화산재를 배출하였다. 이에 일본의 홋카이도혼슈 북부에 5~10cm 두께로 퇴적된 백두산-도마코마이(B-Tm) 화산재 지층을 남겼다. 그린란드 빙하 속에서도 백두산 화산재의 유리조각이 발견되었다.[1][2][3]

이는 1815년 탐보라 화산 분화 당시 약 28 메가톤의 황을 분출한 것과 비교하면 많은 양이다. 그러나 지구 온도를 1도 낮춘 탐보라 분화와 달리 백두산 분화는 기후에 미친 영향이 적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유는 탐보라 화산이 저위도에 위치했던 것과 달리 고위도에 위치한 데다 분화 시기가 겨울이였기 때문으로 추정한다.[2][4]

기록편집

고려사(高麗史)의 세가(世家)에서는 고려 정종 원년(946년)에 ‘이 해 천고(天鼓)가 울리므로 사면령을 내렸다.’고 기록하였다.[5][1][6] 일본의 역사서인 흥복사연대기(興福寺年代記)에서는 천경 9년(946년) 11월 3일 ‘천경의 밤에 하얀 화산재가 눈과 같이 내렸다.’라고 기록하였다.[7][3]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