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덴마크의 속령

그린란드(문화어: 그뢴란, 그린란드어: Kalaallit Nunaat 컬럴리트 누너트, 덴마크어: Grønland 그뢴랜[*])는 대표적 아대륙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이다.[1] 지리상으로는 북아메리카 북쪽에 포함되어 있는 덴마크 왕국의 구성국이자 자치령이다. 수도는 누크이다. 2009년 6월 21일에 자치를 선언해 더 고도화한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속령이므로 국방이나 외교 사안 등 권리가 덴마크에 있지만 그린란드의 지하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사법권, 경찰권, 입법권 등을 독립으로 행사할 수 있다. 덴마크 해협을 두고 아이슬란드, 배핀만을 두고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를 마주한다.

그린란드
그린란드어: Kalaallit Nunaat
덴마크어: Grønland

국기

국장
표어없음
국가그대 우리의 조상의 땅
그린란드의 위치
그린란드의 위치
수도누크 북위 64° 10′ 30″ 서경 51° 44′ 20″ / 북위 64.175° 서경 51.738889°  / 64.175; -51.738889
그린란드(그린란드)
정치
정치체제덴마크 자치령
덴마크 여왕마르그레테 2세
총독
총리
미카엘라 엔젤
무테 보우루프 에게데
역사
자치령덴마크 자치령
 • 자치1979년
지리
면적2,166,086 km2 (12 위)
내수면 비율83.6%
시간대(UTC±00:00 ~ -04:00)
DST없음
인문
공용어그린란드어
인구
2023년 어림56,667[1] (209위)
인구 밀도0.028명/km2
경제
GDP(PPP)2011년 어림값
 • 전체$18억
 • 일인당$37,000
GDP(명목)2011년 어림값
통화크로네 (DKK)
종교
국교덴마크 국민교회
종교덴마크 국민교회 99.9%
기타
ISO 3166-1304, GL, GRL
도메인.gl
국제 전화+299
그린란드의 위성 합성
그린란드의 지도

역사 편집

그린란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 무렵으로, 이누이트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후 서기 986년에는 노르드족에이리크 라우디에게서 발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섬의 이름을 '초록의 땅'이라는 뜻의 '그린란드'라 이름 지었다. 이 때부터 그린란드에 노르드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인 이누이트족과 충돌이 잦았고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린란드의 빙설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이누이트족과 달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고 척박한 환경으로 목재, 등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할 자원의 부족으로 인구 증가에 큰 어려움을 겪어 수와 군사에서 이누이트족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표되는 예로 1379년 이누이트족의 습격을 받아 노르드족 남성 18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노르드족의 인구는 4,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본토와의 교류를 통해 15세기까지 노르드 족은 그린란드에 거주하였으나 소빙기로 해안에 유빙이 생겨나면서 본토와의 교류에 문제가 생긴 데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결국 그린란드의 노르드족 거주지는 소멸되었다. 이후 1721년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루터교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한스 에게데 일행이 그린란드를 탐험했고 덴마크 군대가 그린란드 남서부 연안에 고트호프 요새를 건설하면서 덴마크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자치권의 회복 편집

냉전 시기에 미국은 그린란드 지역에 지정학적 관심을 보여왔으며 1946년 미국은 덴마크에서 그린란드를 1억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는 거절했다. 하지만 1950년 덴마크는 미국의 툴레 공군 기지 건립 제안을 받아들여 1951년 건설을 시작한다. 1953년 완성된 이 기지는 나토의 방어전략의 일환이 된다.

1950년 그린란드에 있던 덴마크의 식민지인 남그린란드, 북그린란드가 통합되면서 덴마크의 단일 식민지인 그린란드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1953년 그린란드 식민지는 덴마크의 한 로 승격되어 그린란드 주가 되었으며, 그린란드인들은 이 시기 덴마크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그린란드는 1979년 5월 1일부터 덴마크 의회에 의해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국가 원수는 덴마크의 국왕이었으며 외교권과 국방도 덴마크가 맡아왔다. 1973년 덴마크가 유럽 경제 공동체(EEC, 현재의 유럽 연합(EU)의 전신)에 가입하면서 그린란드도 유럽 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린란드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상업성 어업 규제와 물개 가죽 제품의 금지 조치에 반발하면서 1982년에 실시된 자체 주민 투표를 통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이탈하기로 결의했고 1985년을 기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완전히 탈퇴하게 된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그린란드의 독립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기도 하였다.[2] 그린란드는 2008년 11월 25일에 자치권 확대를 위한 투표를 치렀다.[3] 그리고 이 투표에서 75%가 자치권 확대에 찬성하면서 독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4] 마침내 2009년 6월 21일에 누크에서 자치권 확대 발효 기념식을 열고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다만 자치권이 발효되어도 여전히 덴마크가 국방이나 외교 사안에는 결정권을 가진다.[5] 이 조치로 덴마크로부터 지원받던 연간 보조금 32억 덴마크 크로네(덴마크의 통화)가 중단되기는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개발 가능성이 생긴 지하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사법 및 경찰권을 가지게 되며, 입법권도 가지게 되었다.[3]

지리 편집

지리-문화로는 북아메리카에, 정치로는 유럽에 속한다. 남동쪽으로 대서양아이슬란드, 동쪽으로 그린란드해, 북쪽으로 북극해, 서쪽으로 배핀만캐나다누나부트 준주가 자리잡고 있다. 섬의 81%가 얼음으로 덮여있다.

그린란드의 면적이 지도상에서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인해 호주보다 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르헨티나보다 작다.

환경 편집

여름 한 철 나무가 자라고 꿀벌과 모기가 날아다닌다. 그린란드의 여름은 2~3주로 짧은 편이며 여름 동안에 그린란드 사람들도 반팔을 입는다. 8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는 백야오로라를 구경하기 위한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6]

행정 구역 편집

경제 편집

워낙 춥고 척박한 날씨 탓에 경작지는 1.1% 정도에 불과하며, 식량은 미국캐나다, 주변 유럽 국가들로부터 수입에 의존한다. 주요 수출품은 새우잡이를 통해 보충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행산업 등과 함께 루비 등 광물자원을 통한 수출이 늘고 있다.

정치 편집

덴마크의 군주가 명목 상의 국가 원수이며 국무총리가 있다.

군사 편집

국군이 없으며 덴마크 측이 군사권을 대행한다.

주민 편집

그린란드인이 85~90%를 차지한다. 덴마크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기타 원주민도 거주한다.

주민들 거의가 그나마 온대 기후를 보이는 주도의 남서쪽에 거주한다.(덴마크)

언어 편집

예전엔 그린란드어덴마크어공용어였지만, 2009년 6월부터는 그린란드어만이 유일한 공식어가 되었으며, 덴마크어는 고등교육의 언어로 남았다.

종교 편집

거의 대부분이 루터교를 믿는다. 일부는 로마 가톨릭교회이나 토착 종교도 믿는다.

국기 편집

스포츠 편집

축구협회와 국가대표가 있기는 하지만 FIFA의 정식 회원국이 아니다. 연중 낮은 기온 때문에 경기장에 잔디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NF-보드의 회원국이다.

2007년에는 독일에서 열린 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린란드는 Island Games과 Arctic Winter Games에 참가하고 있다.

사건 편집

1968년 1월 21일툴레 공군기지 인근에 핵폭탄 4발을 적재한 B-52 폭격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회 문제 편집

그린란드는 2010년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외부 링크 편집